민병덕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10일 '디지털자산기본법'을 대표 발의하며 대한민국 디지털 금융의 미래를 위한 제도적 전환점을 제시했다. 총 30명의 의원이 공동발의자로 이름을 올린 이번 법안은 단순한 법률 제정을 넘어, 글로벌 디지털 경제에서 대한민국이 선도국가로 도약하기 위한 초석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민 의원은 법안 발의에 앞서 4월 초안을 마련한 뒤 업계, 학계, 법조계 전문가들과 세 차례 공개 리뷰를 진행했으며, 대선 기간 선대위 디지털자산위원회에서 논의된 내용도 반영했다고 밝혔다. 그는 "혁신적 시장의 목소리를 반영해 조율한 결과물"이라고 설명했다.
흩어진 법은 하나로...규제 정비·산업 도약 동시에
디지털자산기본법은 블록체인과 AI가 결합된 디지털자산이 전 세계 자본시장과 실물경제를 연결하는 인프라로 부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에는 이를 체계적으로 다룰 종합 법률이 부재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디지털자산 및 디지털자산업의 개념을 명확히 정의하고 법적 불확실성을 해소함으로써, 산업 주체들이 안정적으로 사업을 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다.
민 의원은 "디지털자산은 더 이상 변방의 실험적 수단이 아닌, 블록체인과 인공지능 기술이 융합된 글로벌 경제의 핵심 인프라"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2025년 6월 기준 전 세계 디지털 자산 시장 규모는 약 2.5조 달러(한화 약 3333조 원)로 2020년 대비 3배 이상 성장했다. 미국, 유럽연합(EU), 일본 등 주요국이 디지털자산의 발행, 유통, 거래를 포괄하는 제도화를 선도하는 반면 한국은 여전히 1단계 수준의 자산 보호 중심 법률에 머물러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또한 이번 법안은 기존 가상자산 이용자보호법과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을 흡수·통합할 수 있는 체계를 기반으로 설계됐다. 민 의원은 "이 법이 통과되면 기존의 가상자산 이용자보호법은 불필요해지고, 특금법상 자금세탁 규정도 이 법 아래로 통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디지털자산 정의부터 업권 분류까지…산업 설계 밑그림 제시
우선, 디지털자산과 디지털자산업에 대한 명확한 정의와 적용 범위를 설정했다. 민 의원은 "이번 법안은 가상자산이 아닌 디지털자산이라는 명칭을 채택했다"며 "가상자산이라는 단어가 부정적 인식을 줄 수 있고, 실제 자산으로서의 실체를 명확히 하기 위해 디지털자산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고 말했다.
법안은 디지털자산을 '분산원장에 디지털 형태로 표시된 경제적 가치로, 거래 또는 이전이 가능한 자산'으로 정의하고, 이를 자산연동형 디지털자산(스테이블코인)과 일반 디지털자산(밈코인, 유틸리티코인 등)으로 구분했다.
한국에서 디지털자산을 발행하려는 경우에는 금융위원회에 발행신고서를 제출하고 수리를 받아야 한다. 발행 주체가 없는 비트코인처럼 해외에서 발행된 디지털자산은 발행신고서 제출 대상에서 제외되지만 국내 거래소가 이를 상장하려면 거래지원심사를 거쳐야 한다. 민 의원은 "한국 내 발행인에게 불리하게 보일 수 있지만 금융위의 수리 여부가 해당 디지털자산의 신뢰성을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디지털자산업은 총 10개 업권으로 유형화됐으며 인가, 등록, 신고 등 업권별로 차등화된 진입 요건이 마련됐다. '기타 디지털자산 관련업'을 둔 이유에 대해서는 "디지털자산업은 워낙 창의적인 분야이기 때문에 새로운 업태가 언제든 등장할 수 있어 포괄 조항으로 반영했다"고 밝혔다.
겸영 제한은 두지 않아 은행·보험 등 전통 금융사는 물론 플랫폼 기업이나 일반 기업도 디지털자산업을 영위할 수 있도록 했다. 산업 간 융합을 허용함으로써 게임, 문화, 농수산업 등 다양한 분야와의 연계도 가능하도록 설계됐다.
민 의원은 "불확실한 법은 산업의 최대 장애물"이라며 "사업을 하다가 감옥에 갈 수도 있다는 두려움 속에서는 산업이 성장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디지털자산업은 창의성이 핵심인 분야로, 예측 가능성과 전산 안전성을 바탕으로 민간이 자유롭게 혁신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자기자본 5억·도산 대비 요건 명시…국산 스테이블코인 기준 마련
두 번째로, 자산연동형 디지털자산, 즉 스테이블코인에 대해 사전 인가제를 도입했다. 법안은 이를 '원화 또는 외국 통화의 가치에 연동되며 환불이 보장되는 디지털자산'으로 정의하고 있다.
자산연동형 디지털자산의 발행은 금융위원회의 사전 인가를 받아야 하며 발행 주체의 형태는 주식회사, 비영리법인 등으로 제한하지 않았다. 발행 요건으로는 대한민국 내 설립된 법인이어야 하고, 5억 원 이상의 자기자본을 보유해야 한다.
환불 보장이 핵심인 만큼 투자자 보호를 위한 '준비금' 적립은 필수다. 법안은 준비금 기준을 대통령령으로 위임하고 해당 준비금에 대해 '도산절연(倒産絶緣)' 조항을 법률에 명시해, 발행 주체가 파산하거나 회생 절차에 들어가더라도 준비금은 영향을 받지 않도록 보호 장치를 마련했다.
◎ 자산연동형 디지털자산 발행인 자격요건
1. 대한민국내 설립된 법인일 것
2. 5억원 이상으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금액 이상의 자기자본을 갖출 것
3. 이용자의 보호가 가능하고 행하고자 하는 업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대통령령에서 정하는 충분한 전문인력과 전산설비 등 물적 시설을 갖추고 있을 것
4. 대통령령이 정하는 재무건전성 기준을 충족할 것
5. 대통령령에서 정하는 사항을 포함한 환불 방법 및 환불준비금 등에 관한 계획이 타당하고 적절할 것
6. 사업계획이 타당하고 건전할 것
7. 임원이 제36조에 적합할 것
8. 대통령령이 정하는 주요출자자가 충분한 출자능력, 건전한 재무상태 및 사회적 신용을 갖추고 있을 것
민병덕 의원 측은 "디지털자산은 분산원장 기반으로 전산 안정성이 높고 준비금 등을 통해 환불이 보장되는 구조이기 때문에 자기자본의 중요도는 상대적으로 낮다"고 설명했다.
디지털자산기본법은 발행 주체의 문턱을 낮추되 자기자본과 준비금 요건, 도산 절연 등 핵심 안전 장치를 통해 규제와 혁신의 균형을 꾀한 것으로 평가된다.
다만, 발행 주체를 제한하지 않은 것에 대해 정부 내 이견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대통령실 김용범 정책실장은 과거 해시드오픈리서치 대표 시절, 민간 핀테크 기업까지 포함한 '한국형 원화 스테이블코인 모델'을 제시한 바 있으나 한국은행 이창용 총재는 "비은행 기관의 무분별한 발행은 통화정책 유효성을 저해할 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정책은 정부, 상장은 협회'…3축 분리로 산업 자율성과 견제 체계 강화
셋째, 대통령 직속 '디지털자산위원회' 신설을 통해 국가 차원의 전략적 육성과 정책 조율이 이뤄지도록 했다. 이 위원회는 민간위원이 3분의 2 이상을 차지하도록 설계돼 정책 일관성과 민간 전문성을 동시에 확보하도록 했다.
동시에 금융위원회를 중심으로 인가·등록·신고제를 도입해 진입 장벽을 명확히 하고, 영업행위 원칙과 내부통제 기준을 마련해 산업의 건전성과 투명성을 제고했다.
또, 디지털 자산업협회를 자율 규제 기구로 설립해 거래지원 및 상장 심사, 시장감시, 불공정거래 감리 등의 기능을 수행하도록 했다. 민 의원은 이를 통해 "산업의 자율성과 책임을 강화하고, 건강한 생태계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민 의원은 "대통령께서도 이 분야에 관심이 많고 정책실장도 업계 경험이 있는 인물이라 빠르게 추진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며 대통령 직속 '디지털자산위원회' 신설이 빠르게 이뤄질 것이라는 데 기대감을 내비쳤다.
아울러 디지털 자산업협회와 관련해 "기존 거래소 협의체 닥사(DAXA)는 거래소 위주라 이해충돌 가능성이 있어 협회 중심의 상장 적격성 평가와 시장 감시 기능이 필요하다"는 설명을 더했다.
디지털자산위원회, 금융위원회, 디지털자산업협회의 기능은 정책, 감독, 자율규제로 나눠졌다. 민 의원은 "디지털자산위원회는 대통령 직속으로 정책 조율을, 금융위는 인허가 및 감독을, 협회는 상장심사 및 감리를 담당하게 된다"며 "각 기관의 기능이 분리되어 견제와 균형 속에서 효과적인 제도 운영이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밖에도 법안은 미공개정보 이용, 시세조종, 부정거래 등 시장 질서를 해치는 행위를 엄격히 금지하고, 과징금 및 형사처벌 등 강력한 제재가 가능하도록 했다. 또한, 디지털자산업자의 전산 안전성 확보를 위해 정보보호최고책임자(CISO) 지정, 접근매체 통제, 해킹 방지 조치, 보험 또는 공제 가입 의무 등을 명시해 기술 기반 산업 특성에 맞는 보호장치도 마련했다.
민 의원은 이번 법안이 규제에 그치지 않고 디지털 자산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삼아 금융 주권을 지키는 데 목적이 있다면서 원화 기반 디지털 자산 생태계를 조성하고 민간의 기술력과 혁신 역량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 법은 단순한 규제가 아니라 산업 성장을 위한 가드레일"이라며 “규제 명확화를 통해 세계 디지털자산 시장에서 주도권을 확보하고 국민과 투자자를 보호하는 동시에 글로벌 G2 디지털경제 강국으로의 도약을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미국 FIT21 법안을 통해 디지털자산에 대한 종합 규제 틀을 마련하고 루미스–질리브랜드 법안이나 Stablecoin Act에서는 USD 등 실물자산과의 1:1 연동, 100% 준비금 보유, 상환청구권 보장을 핵심 요건으로 규정하고 있다. 발행 주체는 연방은행이나 주 인가 기관으로 제한되며, 준비금은 현금·국채·예금 등 고유동성 자산에 한정된다. 소규모 발행은 주 면허로 가능하지만 일정 규모를 초과하면 연준이나 OCC의 직접 감독 대상이 된다. 알고리즘형 스테이블코인은 1~2년 유예 후 금지 또는 별도 입법 검토 대상으로 분류된다.
유럽연합(EU) MiCA 규정을 통해 스테이블코인을 전자화폐토큰(EMT)과 자산참고토큰(ART)으로 구분해 규제한다. EMT는 단일 법정통화 연동형으로, EU 인가를 받은 전자화폐기관 또는 은행만 발행할 수 있으며 ART는 다중 통화 또는 자산 바스켓에 연동되는 구조로 별도 인가와 추가 자본 요건이 부과된다. 특히 일정 거래 규모를 넘는 중요 스테이블코인은 유럽은행청(EBA)이 직접 감독하며, 상환청구권, 준비금 분리, 백서 공개 의무도 명문화돼 있다.
일본 자금결제법 개정을 통해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은행, 신탁회사, 자금이체업자 등으로 제한하고 전액 실물자산 기반 준비금 보유와 1:1 환매 가능성을 의무화했다. 외국산 스테이블코인의 국내 유통은 원칙적으로 금지됐으나, 최근 일부 허용된 이후에도 여전히 매우 엄격한 심사 절차가 적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