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미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크립토 위크(Crypto Week)’가 규제 논쟁으로 정치 혼란에 빠졌다. 암호화폐 관련 3건의 핵심 법안 심의가 지연되면서, 미 하원이 역대 최장 시간 동안 절차 투표를 진행하는 진통 끝에 가까스로 합의에 도달했다.
현지시간 17일(수), 하원은 총 9시간에 걸친 절차 투표 끝에 217 대 212로 법안 심의 절차를 통과시켰다. 기존 법안에는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에 대한 금지 조항이 빠졌는데, 이에 일부 강경 공화당 의원들이 반발하며 논의가 지연된 것이다. 결국 하원 공화당 원내대표 스티브 스칼리스는 CBDC 발행 금지 조항을 국방수권법안(NDAA)에 포함시키는 절충안을 제시해 표결 절차를 마무리했다.
문제의 핵심은 CBDC 도입 여부를 두고 강경보수 의원과 친크립토 세력 간 입장차가 극명히 드러나면서 나타난 갈등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직접 백악관에서 반대표 던진 의원들과 면담을 가졌으며, 하원 의장 마이크 존슨도 전화로 중재에 나서는 등 사태 수습에 나섰다.
이번에 논의 중인 법안은 세 가지다. 암호화폐 시장 구조를 다룬 ‘클래리티(Clarity) 법안’, 스테이블코인 관련 규제를 명시한 ‘지니어스(GENIUS) 법안’, 그리고 연준의 CBDC 발행을 명시적으로 금지하는 ‘반(反) CBDC 감시법’이다. 이 가운데 ‘지니어스 법안’에 대해 일부 의원들은 “연준이 디지털달러를 발행할 수 있는 뒷문 역할을 할 수 있다”며 강한 우려를 표시했다.
하원 다수당 총무 톰 에머는 “반(反) CBDC 감시법이 국방수권법안에 포함되면, 미국 국민의 금융 프라이버시를 ‘중국 공산당식 감시 시스템’과 맞바꾸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법안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대표적인 친크립토 정치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주말 전까지 '지니어스 법안'의 통과를 원한다는 뜻을 여러 차례 공개적으로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오는 대선을 앞두고 암호화폐 친화 정책을 주요 테마로 내세우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하원 금융서비스위원회 소속 공화당 의원 빌 후이젠가는 “처음부터 ‘지니어스’와 ‘클래리티’를 별도 투표로 진행할 예정이었다”며 여론을 진정시키는 발언을 내놨다. 하원 금융서비스 소위원장 프렌치 힐 의원 역시 “클래리티 법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또 다른 FTX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며 조속한 규제 정비 필요성을 촉구했다.
암호화폐 업계에서는 이번 혼란을 두고 우려 섞인 시선이 이어졌다. 공정규제 캠페인단체 페어셰이크(Fairshake)의 대변인 조시 브라스토는 “의회가 이제 정쟁을 멈추고 책임 있는 암호화폐 규제에 나서야 할 시점”이라고 꼬집었다.
이번 ‘크립토 위크’는 당초 미국 암호화폐 규제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실제 현실은 대립과 갈등만 쌓이며 혼란만 가중되는 모양새다. 미 의회가 과연 실질적인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을지 업계와 투자자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