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주요 은행들이 스테이블 코인 이자 지급 금지를 요구하며, 예금자에게 거의 무이자 수준의 수익률을 제공하는 현실을 두고 업계 안팎의 비판이 일고 있다. 최근 의회를 통과한 GENIUS법안을 계기로 금융권과 암호화폐 업계 간 로비 전쟁이 본격화되는 양상이다.
지난 7월 통과된 GENIUS법안은 스테이블 코인 발행자가 고객에게 직접 이자를 지급하는 것을 금지했다. 하지만 예외적으로 테더(USDT), USD코인(USDC) 등 주요 암호화폐 거래소들은 이를 보유한 고객에게 리워드를 제공할 수 있다. 이에 대해 미국은행협회(ABA)를 포함한 금융 로비 단체들은 "이중잣대를 허용하는 허점"이라며, 실질적으로 은행들이 예금 유치 경쟁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전통 은행들이 제공하는 이자율은 여전히 0%대에 가까워, 스테이블 코인을 통한 수익 전략이 투자자 이탈을 부추긴다는 것이다.
은행업계는 재무부의 보고서를 인용해, 스테이블 코인이 예금 시장에서 최대 6조 6,000억 달러(약 9,174조 원)의 자금을 흡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는 경기 위기 상황에서의 대규모 예금 유출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신용 창출 기능을 저해해 실물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도 함께 덧붙였다.
그러나 암호화폐 업계는 이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전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 위원이자 현 블록체인협회 대표인 서머 머싱거(Summer Mersinger)는 X(구 트위터)를 통해 "GENIUS법은 충분한 정책 논의를 거친 타협안이며, 은행들의 주장은 허점이 아닌 정책 결정의 결과"라고 일축했다.
코인베이스 법무 책임자 폴 그레왈(Paul Grewal)도 “허점을 언급할 것이 아니라, 스테이블 코인 수익은 고객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Crypto Council for Innovation은 더 나아가, 은행들이 의도적으로 경쟁을 억제하고 있으며, 소비자 선택권과 산업 전반의 성장을 방해한다고 비판했다.
비트와이즈(Bitwise)의 최고투자책임자(CIO) 매트 허건(Matt Hougan)은 X에서 “은행들이 스테이블 코인은 0% 이자여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정작 예금에 대해서도 거의 무이자 수준이라는 건 아이러니”라고 꼬집으며 제이피모건체이스(JPMorgan Chase)의 예금 금리를 조롱하기도 했다.
전 팍소스(Paxos) 컨설턴트 오스틴 캠벨(Austin Campbell) 역시 “은행들은 스테이블 코인을 마비시켜 예금을 무이자로 받아놓고, 부동산 거물에게 위험 대출을 하며 자신들에겐 보너스를 챙기고, 손실은 고객에게 전가하려 한다”며 금융권의 관행을 신랄히 비판했다.
한편, 이 같은 논란은 미국 정치권 내에서 암호화폐 업계와 전통 금융권 간 입법 로비 격돌로 확산 중이다. POLITICO는 이를 두고 “워싱턴에서의 로비 내전이 본격화됐다”며, 내년 대선을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 재집권 가능성에 따라 금융 정책 환경이 크게 바뀔 수 있다고 전했다.
스테이블 코인 생태계를 중심으로 한 암호화폐 금융 시스템이 기존 은행 시스템을 얼마나 대체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논쟁 중이다. 다만, 이번 사태는 기존 금융 질서와 디지털 자산 혁신 간 긴장이 극에 달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분기점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