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화폐 테라·루나의 폭락 사태로 파산한 테라폼랩스의 파산관재인이 미국 트레이딩 기업을 상대로 수조 원 규모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면서, 사태 책임 범위를 둘러싼 법적 공방이 본격화됐다.
2025년 12월 19일(현지시간) 미국 일리노이주 북부 연방지방법원에 따르면, 테라폼랩스를 대신해 청산 절차를 진행 중인 파산관재인 토드 스나이더는 시카고에 본사를 둔 고빈도매매(HFT) 전문 트레이딩 업체 점프 트레이딩과 이 회사 공동 창립자 등을 대상으로 최소 40억 달러(약 5조 9천억 원)의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 소송은 단순한 거래 분쟁을 넘어, 2022년 발생한 테라·루나 폭락 사태의 본질적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가리는 핵심 쟁점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스나이더 관재인은 점프 트레이딩이 테라폼랩스가 발행한 테라(UST)와 루나(LUNA)라는 가상화폐에 대한 거래 과정에서 부당 이득을 취했으며, 이들 자산의 붕괴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특히 특정 시점에 인위적인 가격 지지를 통해 시장을 오도했다는 주장이 핵심이다.
실제로 점프 트레이딩의 자회사인 타이모샨은 2021년 5월, 테라의 가치가 기준점 아래로 하락하자 이를 대량으로 매수해 일시적인 가격 방어에 나선 바 있다. 이 조치는 당시에는 시장 안정화 조치로 여겨졌지만, 결과적으로는 알고리즘 기반 스테이블 코인이라는 테라의 구조적 취약성을 숨긴 채 허위의 안정성을 내세웠다는 논란을 낳았다.
이후 2022년 5월, 테라와 루나의 가치가 한꺼번에 붕괴되며 가상화폐 시장에서 400억 달러(약 59조 원) 이상이 증발했고, 이는 전 세계적으로 개인투자자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안겼다. 테라폼랩스의 공동 창업자인 권도형 전 대표는 당시 이 같은 가격 방어가 자율적인 알고리즘 작동 결과라고 주장했으나, 해당 행위가 외부 개입에 의한 것이라는 점이 밝혀지면서 미국 연방 검찰로부터 사기 혐의로 기소돼 최근 징역 15년형을 선고받았다.
한편, 테라폼랩스는 2023년 1월 미국 파산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했으며, 같은 해 9월부터 공식적인 청산 절차에 들어갔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이 사건과 관련해 테라폼랩스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했고, 그 결과 회사는 약 44억7천만 달러(약 6조6천억 원)에 이르는 환수금 및 벌금을 납부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점프 트레이딩의 자회사인 타이모샨 역시 약 1조5천억 원의 수익을 거둔 것으로 지목되며, 2023년 12월 SEC와 1억2천300만 달러(약 1천800억 원)의 과징금 납부에 합의했다.
이번 손해배상 소송은 테라 사태 이후 가상화폐 시장에서의 책임 구조를 다시 규명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재정 회복을 노리는 파산 채권자들에게는 회수 가능성을 높이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는 반면, 고빈도매매 등 시장 전문 기관들의 역할과 윤리에 대한 규범도 함께 시험대에 오르게 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