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부가 러시아 기업의 위안화 채권 발행을 다시 허용하기로 하면서, 두 나라 간 금융 협력이 한층 더 공고해지고 있다. 이는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처음으로 러시아 기업이 중국 본토에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길이 다시 열리는 것으로, 중국의 반서방 기조가 금융 분야에서도 구체화되고 있는 신호로 해석된다.
이번 조치는 중국 금융 당국이 지난 8월 광둥성 광저우에서 러시아 에너지 기업 관계자들과 만나 판다 본드(외국 기업이 중국 본토에서 발행하는 위안화 표시 채권)의 재개 방침을 전달한 데서 비롯됐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9월 7일자 보도에서 이 같은 사실을 전하며, 러시아 기업이 중국 채권 시장에 다시 진입할 수 있도록 중국 당국이 제도적 지원에 나섰다고 전했다.
애초 러시아는 2017년 알루미늄 생산 기업 루살을 통해 약 15억 위안 규모의 판다 본드를 발행한 바 있다. 그러나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미국과 유럽연합의 강력한 제재가 단행되면서, 러시아 기업들은 글로벌 금융 시장에서 사실상 퇴출당했다. 이에 중국 내 은행들도 2차 제재를 우려해 러시아 측 자본과의 직접 거래를 꺼려왔고, 양국 간 채권 등의 금융 거래는 중단된 상황이었다.
하지만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중국을 향해 무역과 관세 압박을 높이는 한편, 러시아에는 즉각적인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요구하면서, 중국과 러시아는 상호 협력을 더욱 밀착시키는 방향으로 기울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9월 2일 베이징을 방문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양국 관계를 “전례 없이 높은 수준”이라고 평가하며 정치·경제 양면에서 긴밀한 협력을 공식화했다.
판다 본드 발행이 실제로 재개될 경우 초기에는 러시아 국영 원자력 기업 로사톰과 일부 계열사 등 2~3곳의 국책 기업이 먼저 참여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이는 서방 제재 대상 기업을 피하고, 거래 상대방인 중국 금융기관의 위험 부담을 줄이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일부 전문가들은 아직 제재 대상이 아닌 기업을 통한 우회 발행이 현실적 대안이지만, 제재가 추후 확대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고 경고하고 있다. 미국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의 규제 범위를 고려하면, 관련 기업이 사후에 제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 같은 흐름은 미국과 서방의 대러 제재가 지속되는 한, 중국과 러시아 간 금융 협력의 실질적 확대를 반영하는 조치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향후 중국 내 러시아 자금 조달이 단계적으로 허용되면, 양국은 달러 중심의 금융 네트워크를 우회할 수 있는 대체 시장을 구축해 나갈 수도 있다. 다만, 주요 은행이 2차 제재를 우려해 보수적으로 접근할 가능성도 남아 있어, 실질적인 채권 발행까지는 일정한 진통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