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노후 의제가 ‘얼마를 물려줄 것인가’에서 ‘얼마나 오래 자립할 것인가’로 이동하고 있다. 고령화가 빨라지면서 상속, 돌봄, 은퇴자산 운용을 함께 다시 짜야 한다는 신호가 커졌다.
스티브 핀치(Steve Finch) 마누라이프(Manulife) 아시아 최고경영자는 포춘(Fortune) 기고문에서 아시아 가족이 향후 10년간 약 10조 달러(약 1경3690조원)의 자산을 다음 세대로 넘길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 흐름이 단순한 부의 이전이 아니라 노후 독립을 지키는 문제와 맞물려 있다고 봤다.
마누라이프는 ‘아시아 케어 서베이 2026’에서 9개 아시아 시장의 성인 9000명 이상을 조사했다. 조사 결과 응답자의 83%는 자녀에게 최대한 많은 상속을 남기는 것보다 독립과 재정 자유를 지키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답했다.
응답자들은 평균 68%의 금융자산을 자신의 노후와 의료비에 쓰겠다고 했다. 상속을 먼저 계산하던 노후 설계가 건강 유지와 돌봄 비용, 은퇴소득 확보를 함께 보는 방식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뜻이다.
국가별 차이도 컸다. 대만 응답자는 자신의 건강과 돌봄 비용에 자산의 78%를 배정하겠다고 답했고, 필리핀과 인도네시아는 각각 60%였다.
홍콩 조사에서는 90%가 가능한 오래 자립하겠다고 했고, 71%의 금융자산을 미래 필요 비용에 쓰겠다고 했다. 말레이시아에서는 84%가 독립을 ‘새로운 유산’으로 봤고, 83%가 향후 돌봄 비용을 자기 저축으로 감당할 계획이라고 답했다.
고령화 속도는 이 변화를 밀어붙이는 배경이다. 유엔인구기금(UNFPA)은 2026년 6월 30일 글에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60세 이상 인구 비중이 2022년 14.3%에서 2050년 25%로 늘어난다고 설명했다.
가족 규모 축소와 이동성 확대도 기존 가족 돌봄망을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제시됐다. 과거에는 자녀 세대가 돌봄의 기본 안전망 역할을 했지만, 수명 연장과 도시 이동이 겹치면서 노후 비용을 개인 재정계획 안에서 더 크게 반영해야 하는 구조가 됐다.
문제는 희망과 준비 사이의 간극이다. 마누라이프 조사에서 아시아 응답자의 89%는 가능한 오래 재정적으로 독립하고 싶다고 답했지만, 은퇴와 돌봄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투자를 활용한다는 응답은 51%에 그쳤다.
포춘 기고문은 이 대목을 두고 저축과 보험, 은퇴소득, 예방의료를 함께 설계해야 한다고 짚었다. 오래 사는 시대의 재정 독립은 단순히 더 많이 모으는 문제가 아니라, 의료비와 돌봄비가 발생하는 시점까지 현금흐름을 유지하는 문제라는 해석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제도적 제약을 지적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는 ‘아시아 자본시장 보고서 2025’에서 아시아 다수 국가의 연금자산 운용이 여전히 보수적이고 정부채권에 집중돼 있다고 밝혔다.
연금자산이 정부채권에 치우치면 안정성은 높아질 수 있지만 장기 수익률과 은퇴소득 확충에는 한계가 생길 수 있다. 고령화로 필요한 노후자금은 늘어나는 반면 실제 자산 배분은 여전히 방어적으로 남아 있는 셈이다.
보험사와 자산운용사에는 상품 설계의 문제로 이어진다. 노후 독립은 상속 포기나 가족 해체가 아니라 자녀 세대의 돌봄 부담을 줄이는 재정 계획의 언어로 바뀌고 있다.
다만 지역 평균만으로 아시아 전체를 단정하기는 어렵다. 국가별 소득, 의료비, 공적연금 수준, 가족 부양 구조가 달라 같은 ‘자립’이라는 응답도 실제 준비 방식은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이번 조사는 고령화가 상속의 의미까지 바꾸고 있음을 보여준다. 자산 이전 규모가 커지는 동시에 노후 독립 비용도 커지면서, 아시아 가계의 다음 과제는 남길 돈과 쓸 돈의 균형을 다시 정하는 일이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