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샌드박스'로 암호화폐 규제 실험 착수…타이거리서치, 정책 전환 분석

타이거리서치(Tiger Research)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베트남 정부가 관망적이던 암호화폐 정책 기조에서 벗어나 2026년 중반까지 샌드박스 제도 도입을 골자로 한 체계적인 규제 프레임워크를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흐름은 베트남이 장기간 유지해온 규제적 회색지대를 끝내고, 암호화폐를 제도 속에서 통제 및 실험하려는 분명한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베트남은 오랜 기간 암호화폐 사용율이 높은 국가로, 성인 인구의 21% 이상이 암호화폐 보유 및 사용 경험이 있는 시장이다. 글로벌 암호화폐 채택 지수에서도 상위권을 유지해 왔으며, 디파이(DeFi), 게임파이(GameFi) 등 다양한 방식으로 생태계가 급속하게 확장되어왔다. 하지만 이와 같은 활발한 시장 활동에도 불구하고 베트남 정부는 암호화폐를 결제 수단으로 인정하지 않았고, 명확한 사업자 라이선스 체계도 부재해왔다.

이 같은 불확실성은 베트남이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의 ‘그레이 리스트’에 오른 결정적 배경 중 하나로 작용했다. 이에 따라 베트남 내부에서도 제도 정비 필요성이 본격적으로 제기되기 시작했다. 타이거리서치에 따르면 2025년 총리 지시에 따라 재무부가 중심이 되어 암호화폐 샌드박스를 개발 중이며, 글로벌 거래소 바이빗(Bybit)과 협력해 관련 시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 샌드박스는 중앙화 거래소의 AML/KYC 준수 여부, 스테이블코인 활용 방식, 투자자 보호 기준 등을 검증하는 통제된 실험장으로 기능할 예정이다.

현재 베트남 암호화폐 규제 체계는 중앙은행, 재무부, 증권위, 법무부, 공안부 등 복수 기관의 이해관계가 얽힌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중앙은행은 여전히 보수적인 기조를 유지하며 암호화폐 결제를 금지하고 있지만, 재무부는 바이빗과의 협력을 통해 암호화폐 샌드박스 도입을 주도하고 있다. 법무부는 디지털 자산의 민법상 정의 확립을 추진하고 있으며, 증권위는 투자형 토큰과 관련된 공시 의무 및 사기방지 기준 마련에 공을 들이고 있다.

특히 2024년 10월 발표된 '국가 블록체인 전략 2024-2030'(결정서 1236/QĐ-TTg)은 베트남 디지털 전환의 핵심 축으로 블록체인을 공식 채택하겠다는 정부의 의지를 담고 있다. 본 전략은 여러 산업에 걸쳐 블록체인 기술 활용을 활성화하고, 민간 참여를 전제로 한 블록체인 기반 생태계를 육성하겠다는 내용을 포함한다. 타이거리서치 분석에 따르면 이러한 방향성은 단순한 규제 강화가 아닌, 기술 실험을 위한 제도적 환경 조성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2026년 중반 샌드박스의 공식 출범은 베트남에게 단순한 규제 도입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정부와 민간이 실시간으로 규제 효과를 테스트하고 피드백을 반영하는 구조 속에서, 제도화 이전 초기 참여 기업들은 훨씬 유리한 사업적 입지를 점할 수 있다. 이 시점에 샌드박스에 참여하는 기업들은 새로운 기준에 기반한 서비스 운영과 컴플라이언스 모델을 조기 구축해 베트남 시장의 제도화 과정에서 선두주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장기적으로 베트남 블록체인 산업의 경쟁력은 기술적 우위보다 규제 대응력, 운영의 투명성, 그리고 제도 변화에 대한 신속한 적응 능력이 좌우하게 될 전망이다. 과거 투기 자산 중심의 인식에서 벗어나 디지털 금융 인프라로서 블록체인을 재인식하는 흐름 속에서, 베트남이 동남아 시장의 주요 암호화폐 허브로 부상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타이거리서치는 베트남의 규제 실험이 규제와 혁신 간 균형을 이루는 글로벌 모범 사례로 발전할 잠재력을 갖추고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