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글로벌 블록체인 산업의 큰 화두는 단연 '스테이블 코인'입니다. 국내 또한 원화 스테이블 코인 관련 기사가 끊임 없이 나오며 카카오페이, 카카오뱅크, 다날 등 많은 회사들이 너도나도 상표권을 출원했고 주가도 긍정적으로 반응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더 많은 기업들이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가치 있는 혁신을 이룰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을 비전으로 삼고 있는 저희 INFCL도 많은 기업의 의사결정자분들과 소통하며 배운 바를 공유해보고자 합니다.
시장의 많은 보고서는 스테이블코인이 전통 결제 시스템에 비해 훨씬 빠르고 저렴하다고 강조합니다. VISA나 SWIFT가 부과하는 수수료와 스테이블코인의 수수료를 일대일로 비교하며, 블록체인 기반의 결제가 곧 비용 혁신을 이끌 것이라고 단언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현재 시점에서 사실과 거리가 있습니다. 미래에는 충분히 현실화될 수 있겠지만, 지금의 비용 구조를 단순 비교하는 것은 위험한 일반화에 가깝습니다.
전통 결제 시스템의 비용은 결코 단순한 '수수료'만으로 환원되지 않습니다. 비용을 논하기 전에, 우리는 먼저 이 시스템이 어떻게 리스크를 관리하고 신뢰를 보장하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한 고객이 식당에서 100달러를 카드로 결제할 경우 총 수수료는 약 3.2달러로 추산됩니다. 이 금액은 다양한 기관에 분배됩니다. VISA는 약 0.15달러를, 카드 매입사는 0.1달러를, 결제대행사(PSP)는 0.85달러를, 카드 발급 은행은 2.1달러를 각각 수취합니다.
이러한 수수료에는 단순한 결제 처리 비용을 넘어, 위험 조정과 규제 준수에 드는 비용이 포함됩니다. 고객의 카드가 도난당했을 때 누가 그 피해를 보상할까요? 사기가 발생하면 누가 책임을 질까요? 거래 승인과 정산 과정에서 생기는 신용 리스크와 컴플라이언스 리스크는 모두 결제 시스템 참여자들이 공동으로 분담하고 있습니다. 카드 발급 은행은 소비자의 신원을 확인하고, 매입사는 거래의 적법성을 보증하며, VISA는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해 모든 거래를 검증하고 승인합니다. 이 모든 역할과 책임에는 상당한 비용이 따릅니다.
반면, 스테이블코인은 이제 막 금융 인프라로서 기능을 준비하는 단계에 있습니다. 현재의 스테이블코인 생태계에서는 아직 규제 준수와 위험 조정에 대한 비용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규제기관과 사법당국이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제한적이며, 대규모 해킹이나 사기 발생 시 대응 체계 역시 초기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따라서 '지금 당장'의 관점에서는 스테이블코인이 전통 결제망보다 저렴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기업들이 스테이블코인에 주목하는 이유는 비용 절감이 아닙니다. 스테이블코인은 기존 금융 시스템이 수행해온 송금, 규제 준수, 라우팅, 정산 등 복잡한 작업들을 프로그래밍 가능한 코드로 대체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잠재력이야말로 스테이블코인이 가지는 본질적인 경쟁력입니다. 인터넷이 정보를 손쉽게 복제·전송하는 방식을 혁신했다면, 블록체인은 가치를 안전하게 이전하며 이중지불 문제를 해결합니다. 결국 스테이블코인은 프로그래머블 머니로서 확장성과 상호운용성, 자동화 가능성을 바탕으로 장기적으로 비용 측면에서도 우위를 점할 가능성이 큽니다.
과거 클라우드 기술은 초기에 온프레미스(On-Premise) 방식에 비해 높은 비용과 불확실성을 갖고 있었지만, 클라우드 기술을 선도적으로 도입한 기업들은 구조적 우위와 혁신적 잠재력으로 인해 디지털 시장에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스테이블 코인과 블록체인 기술도 마찬가지로 발 빠르게 대응하는 기업들이 미래 금융 생태계의 승자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금융의 미래를 논할 때, '얼마나 저렴한가'가 아닌 '구조적 우위를 어떻게 활용 가능한가'에 주목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