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10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의 '중국 100% 관세' 발언으로 촉발된 급락 사태 이후 바이낸스의 시스템 오류와 과도한 청산 문제가 제기되며 불안과 루머가 빠르게 확산됐다. 'FBI 도메인 압수', '자금 동결', 'FTX 재현' 등 자극적인 주장으로 번지며 소셜미디어 전반으로 퍼지고 있다.
바이낸스는 즉각 근거 없는 공포 조장(FUD)이라며 일축했지만 시장의 혼란은 여전히 가라앉지 않았다. 약화된 투자 심리를 노린 의도적 공세인지, 세계 최대 거래소의 구조적 취약성과 불투명성이 드러난 결과인지를 두고 시선이 엇갈리고 있다.
트럼프 '관세 발언' 하루 만에 시장 붕괴
"중국산 수입품에 100%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단 한마디가 전 세계 시장을 뒤흔들었다. 발언이 나온 지 불과 24시간 만에 글로벌 금융시장은 패닉에 빠졌고 암호화폐 시장은 순식간에 붕괴했다.
불과 나흘 전 비트코인은 12만6038달러로 사상 최고가를 경신했지만 이날 하루 만에 약 15% 급락, 한때 10만9000달러 초반까지 밀렸다. 이더리움은 4400달러에서 3600달러로, 솔라나는 220달러에서 170달러로 추락했고 XRP는 2.8달러에서 1.8달러로 폭락했다.
The largest liquidation event in crypto history.
— CoinGlass (@coinglass_com) October 10, 2025
In the past 24 hours, 1,618,240 traders were liquidated, with a total liquidation amount of $19.13 billion.
The actual total is likely much higher — #Binance only reports one liquidation order per second.… pic.twitter.com/tvMCILVgU0
급격한 조정이 과도한 레버리지 포지션을 무더기로 청산시키며 시장 붕괴를 더욱 가속화했다.
코인글래스는 "하루 동안 161만8240명의 트레이더가 포지션을 잃었고 청산 규모는 총 191억3000만 달러(롱 167억 달러)에 달했다"며 이날을 '암호화폐 역사상 최대 청산일'로 기록했다. 이에 더해 "바이낸스가 초당 한 건의 청산 주문만 집계한다"는 점을 언급하며 실제 규모는 이보다 훨씬 클 수 있음을 밝혔다.
가격 오류와 강제 청산 논란, 바이낸스 신뢰성 시험대에
시장 급락의 충격은 곧바로 세계 최대 거래소 바이낸스로 향했다.
급락 당시 바이낸스 내부 가격 산정 시스템 오류로 일부 담보자산(USDe, WBETH, BNSOL 등)이 급격히 디페깅(가격 고정 해제) 됐다. 이로 인해 담보 가치가 비정상적으로 하락하고 과도한 강제 청산으로 이어졌다. 일부 거래쌍에서는 가격이 '0'으로 표시되는 오류까지 겹쳐 투자자 공포가 극대화됐다.
업계와 커뮤니티에선 시스템 투명성과 안정성, 내부 리스크 관리에 대한 근본적 검증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크립토닷컴 CEO 크리스 마스잘렉은 "시장 급변 시 일부 거래소가 멈추거나 기능이 저하돼 이용자 거래가 중단됐다"며 거래 체결 가격의 정확성·시장지수 반영 여부·내부 정보 차단 시스템 등을 규제당국이 면밀히 조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하이퍼리퀴드 CEO 제프 옌은 대규모 청산을 기록했지만 이마저도 과소 보고된 것일 수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코인글래스가 주장한 것처럼 "바이낸스는 초당 한 건의 청산 주문만 기록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실제보다 최대 100배 이상 적게 보고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단순한 기술 문제 이상으로 사태를 해석하기도 했다. 컨플럭스(CFX) 임원 포기븐(Forgiven)은 이번 사태가 바이낸스 통합계정 마진 시스템의 구조적 약점을 노린 사전 공격일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을 내놨다.
USDe, BNSOL, WBETH 등 실시간 시세 기반 자산을 마진 담보로 허용한 구조가 문제였다면서 "시장 급변동 상황에서 담보 가치가 급락하면서 연쇄 청산이 발생한 것"이며 다른 탈중앙 거래소(DEX)에서 0.3% 이내였던 스테이블코인 USDe의 가격 괴리가 바이낸스에서 최대 35% 이상 벌어진 점 등을 언급했다.
이번 급락이 "XRP 롱 포지션을 청산하기 위한 인위적 설계"라는 추측성 해석도 나왔다. 트레이더 EGRAG CRYPTO는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이 10%대 하락에 그친 반면 XRP만 70% 폭락한 것은 비정상적"이라고 주장하며 이에 대한 바이낸스와 창펑 자오 전 CEO의 책임 가능성을 시사했다.
위기 대응 나선 바이낸스, 보상·투명성 강화로 불신 잠재우기 시도
바이낸스는 가격 산정 모듈의 일시적 장애와 오라클 연동 문제를 원인으로 인정했으며 24시간 내 전액 보상을 진행했다.
허 이 바이낸스 공동 창립자는 "지난 16시간 동안 시장의 큰 변동성과 이용자 급증으로 인해 일부 사용자들이 거래 과정에서 문제를 겪은 것으로 확인됐다"고 공식 사과하며 "바이낸스의 책임으로 인한 손실에 보상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바이낸스는 문제를 회피하지 않는다"며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변명하지 않고 책임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Due to significant market fluctuations over the past 16 hours and a substantial influx of users, some users have encountered issues with their transactions. I deeply apologize for this. If you have incurred losses attributable to Binance, please contact our customer service to… https://t.co/9Q7GZuFY5H
— Yi He (@heyibinance) October 11, 2025
다만 시장 급락의 근본 원인을 제공했다는 지적에는 선을 그었다. 시장 변동과 이용자 급증으로 일부 거래 지연이 있었지만 선물·현물 거래 엔진과 API는 정상 작동했고 자사 청산 비중이 전체 거래량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낮았다며 이번 사태가 시스템 결함이 아닌 글로벌 시장 불안과 과도한 레버리지 청산이 동시에 발생한 결과라고 강조했다.
언(Earn) 상품의 디페깅(가격 고정 해제) 사태는 "폭락의 원인이 아닌 사후적 현상"이며 관련 담보 청산 및 내부 이체 문제로 손실을 입은 고객에 대한 보상을 완료했다고 밝혔다. 일부 거래쌍의 급락과 '0달러 표시' 오류에 대해서는 "2019년 이전 지정가 주문이 유동성 부족 구간에서 한꺼번에 체결되면서 발생한 일시적 현상으로 실제 거래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다만 신뢰가 산업의 시작점인 만큼 시스템 안정성 보강과 사용자 인터페이스(UI) 개편, 데이터 투명성 제고와 실시간 대응 체계 강화 등 개선을 약속했다.
또한 피해 이용자 지원을 위해 '투게더 이니셔티브'를 출범, 이번 강제청산 관련 개인 투자자 손실에 대해 3억 달러 규모 보상 기금을 운영하고 기관 투자자에게는 1억 달러 규모 저금리 대출 펀드를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불거지는 근본적 불신…상장 구조와 중앙화 모델 향하는 비판
기술적 오류 해명과 신속한 보상 조치에도 불구하고 시장의 불신은 상장 구조의 불투명성과 중앙화 거래소의 권한 남용을 둘러싼 근본적 불만으로 번지고 있다.
논란의 불씨는 14일 리미트리스(Limitless) 창업자 CJ 헤더링턴의 폭로에서 시작됐다. 그는 X(트위터)를 통해 바이낸스가 프로젝트 상장 과정에서 과도한 요구 조건을 제시하고 있다며 코인베이스의 단순한 상장 기준과 대조된다고 주장했다.
CJ에 따르면 바이낸스는 일부 프로젝트에 '알파 상장'이라는 조기 거래 기회를 제공하는 대가로 ▲전체 발행량의 5%(4% 사용자 에어드롭, 1% 마케팅) ▲보안 예치금 25만 달러(약 3억5000만 원) ▲BNB 기반 추가 부담금 200만 달러(약 28억 원) 등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반면 코인베이스는 '베이스 상의 의미 있는 개발 실적'만을 상장 요건으로 제시했다고 설명했다.
It should cost 0% to be listed on an exchange. https://t.co/KBt1o74Bs9
— jesse.base.eth (@jessepollak) October 14, 2025
코인베이스의 개발 총괄 제시 폴락도 동조하며 "거래소 상장은 비용이 없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바이낸스의 상장 구조가 자금 여유가 있는 소수만 진입 가능한 구조라며 탈중앙화 정신에 반한다고 지적했다.
상장 수수료 논란이 커지자 바이낸스는 신속히 해명에 나섰다. 회사는 "상장을 통한 직접 수익은 없으며 프로젝트 토큰은 알파 에어드롭·런치풀·트레이딩 이벤트 등을 통해 모두 이용자에게 돌아간다"고 밝혔다. 또 "상장 예치금은 투기 방지와 신뢰 확보를 위한 장치로, 약속을 이행한 프로젝트에는 전액 환급된다"고 설명했다.
Unpopular opinion post:
— CZ 🔶 BNB (@cz_binance) October 15, 2025
On Listing "Fees" (saw this a few times recently)
1. If you are a project complaining about listing airdrops or "fees" (to users),
Don't pay it.
If your project is strong, exchanges will race to list your coin.
If you have to beg an exchange to list,… https://t.co/DtEMb4RdS0
논란이 이어지자 창펑 자오(CZ) 전 CEO도 직접 입장을 밝혔다. 그는 "상장 수수료 자체보다 프로젝트의 경쟁력과 시장 기여도를 봐야 한다"며 "실력 있는 프로젝트라면 거래소가 먼저 상장을 제안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거래소에 대해서도 "경쟁 거래소를 비난하기보다 스스로 수수료를 0으로 낮추면 된다"면서 시장은 다양한 모델이 공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팬케이크 스왑 등 DEX 대안도 있다며 비난의 타당성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루머 확산에 "바이낸스도 FTX 재현하나" 극단 전망까지
이같은 공방 속에 비난 공세와 불안 여론이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급속히 확산됐다. 약 7만 명 이상의 팔로워를 보유한 인플루언서 Curb.sol(@CryptoCurb)가 확산의 중심에 섰다.
그는 "바이낸스의 내부 오라클 오류로 인해 고객 자산 수십억 달러가 증발했다"며 "이는 역사상 가장 큰 금융 사기 중 하나이자 중앙화 거래소 역사상 가장 명백한 내부 통제 실패 사례"라고 비판했다. 그는 사태 이후 바이낸스에서 200억 달러 이상이 순출금됐다면서 거듭 거래소에 대한 보이콧을 촉구했다.
Curb.sol는 "이번 사태로 여러 펀드와 대형 투자자들이 시스템 오류로 수백만 달러의 손실을 입었고 명확히 중앙화된 구조에서 비롯된 이번 사태는 결코 묻혀지지 않을 것"이라며 "도메인이 FBI에 의해 압류되고 자금이 동결돼 연방 청문회가 종료될 때까지 인출이 제한될 수도 있다"는 극단적 전망까지 내놨다.
BINANCE- how this will go down from someone that's seen a few CEX's taken down
— curb.sol (@CryptoCurb) October 15, 2025
1) binance domain will be seized by the @FBI
2) all funds will be frozen
3) you wont be able to withdraw until federal hearing (multiple years)
remove your funds from binance IMMEDIATELY.
this is… pic.twitter.com/b1cRDJb5WM
바이낸스의 보상 조치에 대해서도 여론 무마용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내부 오라클 오류가 플래시 크래시를 일으켜 약 4000억 달러 규모의 청산이 발생했지만 바이낸스는 고작 4000만 달러로 사태를 덮으려 한다"며 "보상액이 실제 손실 규모에 턱없이 못 미친다"고 비판했다.
CJ가 제기한 상장 문제에도 힘을 실었다. 바이낸스가 CJ에 대해 법정 대응을 예고했다가 한 발 물러난 것에 대해 그는 "이 같은 폭리 수준의 요구에 대한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바이낸스는 법적 조치를 운운하며 대응하는 패턴을 반복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바이낸스 뱅크런설 일축…공동 창업자들, '데이터가 말한다'며 반격
Curb.sol의 주장이 실제로 현실화될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지만 비판 여론이 확산되는 가운데 일부 트레이더들은 "바이낸스가 결국 과거 중앙화 거래소들과 유사한 결말을 맞을 수 있다"며 "FTX나 BTC-e 사태가 재현될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를 제기했다. 한편, 이에 맞서 다른 일각에서는 '바이낸스 뱅크런' 루머를 일제히 반박하며 방어에 나서고 있다.
암호화폐 애널리스트 Quinten(048.eth)은 "바이낸스 뱅크런설은 하이퍼리퀴드 진영 인플루언서들이 퍼뜨린 조작된 이미지에 기반한 허위 정보"라며 "실제 데이터상 지난 한 달간 바이낸스의 보유 자산은 오히려 2% 증가했다"고 지적했다.
다른 인플루언서 Alex 역시 "다른 거래소들이 순유출세를 보이는 반면, 바이낸스에는 최근 24시간 동안 42억 달러가 순유입됐다"며 "말보다 데이터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바이낸스 창립자 창펑 자오(CZ)도 직접 나섰다. 다양한 채널을 통해 진행되는 7억 달러 상당의 보상 방안들을을 언급하며 "말보다 행동이 중요하다(Talk is cheap)"고 꼬집었다. 그는 "정부는 암호화폐를 구제하지 않지만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한다"며 "보상금을 받은 사용자들이 직접 경험을 공유하는 모습을 보니 기쁘다"고 밝혔다.
허이 공동 창업자도 최근 제기된 200억 달러 유출설은 근거 없는 의혹(FUD)이라 일축했다. 디파이라마 데이터를 인용하며 역대 최대 규모 강제청산 이후 약 200억 달러 상당 자금이 순유출됐다는 의혹과 달리 오히려 40억 달러 이상이 순유입됐다고 반박했다.
그는 "바이낸스는 창립 이후 수많은 위기를 겪었지만 그때마다 다시 일어섰다"며 "이번 가격 폭락으로 피해를 본 이용자들이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비난과 공격이 이어지고 있지만 피해 이용자 지원은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라며 "바이낸스는 옳은 일을 해야 한다는 믿음으로 움직인다. 업계가 존재하는 한 바이낸스는 살아남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반적인 사태는 일시적 시스템 혼선과 과도한 청산이 맞물리며 촉발됐지만 중앙화 거래소가 지닌 구조적 한계와 시장 신뢰의 취약성이 드러난 게 사실이다. 바이낸스가 신속한 보상과 대응으로 위기 확산을 막았지만 불투명한 시스템과 영향력에 대한 의구심이 남은 만큼, 기술적 결함이든 구조적 문제든 중앙화 거래소 모델 전반에 대한 검증과 투명성 강화 요구로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