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 시장의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국제통화기금(IMF)이 각국 중앙은행을 향해 기존 화폐 시스템의 근본적인 혁신을 주문하고 나섰다. 민간 주도의 암호화폐 시장이 급성장하는 상황에서,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안전 자산’의 지위를 지키기 위해서는 블록체인 기술을 입은 ‘토큰화된 준비금(Tokenized Reserves)’ 도입이 필수적이라는 분석이다.
IMF는 2025년 11월 발표한 핀테크 노트 ‘중앙은행의 토큰화된 준비금 탐구’를 통해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금융 인프라 현대화 전략을 제시했다. 이는 단순한 디지털 화폐(CBDC) 실험을 넘어, 미래 금융의 표준을 선점하기 위한 중앙은행의 ‘게임체인저’ 전략으로 풀이된다.
‘돈의 미래’ 주도권 다툼… 중앙은행 등판론 힘 받나
보고서의 핵심은 미래 금융 생태계에서 ‘중앙은행 화폐’의 역할을 수호하는 데 있다. 최근 국채나 회사채 등 실물 자산을 블록체인 기반의 토큰으로 변환해 거래하는 ‘자산 토큰화’가 월가(Wall Street)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문제는 이 시장에서 결제 수단으로 민간이 발행한 스테이블코인 등 암호화폐가 득세할 경우, 금융 시스템의 안정성이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이다.
IMF는 이에 대한 해법으로 ‘토큰화된 준비금’을 제시했다. 이는 중앙은행이 금융기관에 발행하는 지급준비금을 분산원장기술(DLT) 기반으로 발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IMF 측은 “민간 발행 화폐와 달리 토큰화된 준비금은 중앙은행의 부채로 잡히기 때문에 신용 및 유동성 리스크가 없는 가장 안전한 결제 자산”이라며 도입 필요성을 역설했다 .
‘아토믹 결제’로 금융사고 ‘0’ 도전… 효율성·안전성 두 마리 토끼
IMF가 주목한 기술적 혁신의 핵심은 이른바 ‘아토믹 결제(Atomic Settlement)’다. 기존 금융 시스템에서는 자산을 건네는 시점과 대금을 받는 시점에 시차가 발생해, 한쪽이 채무를 불이행할 위험(헤라슈타트 리스크)이 존재했다.
하지만 토큰화된 준비금을 활용하면 자산 이전과 대금 지급이 하나의 거래 안에서 동시에, 그리고 즉각적으로 이뤄진다. IMF는 보고서에서 “자산과 돈이 단일 원장(Single Ledger) 위에서 움직일 때 기술적으로 결제 불이행 가능성을 원천 차단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는 증권 결제(DvP)나 외환 거래(PvP)의 효율성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는 기술이다.
통화정책도 ‘알고리즘’ 시대로… 자동화된 유동성 관리
이번 보고서는 토큰화가 중앙은행의 고유 권한인 통화정책 수행 능력을 저해하지 않으며, 오히려 이를 고도화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특히 ‘프로그래밍 가능한 돈’의 특성을 활용하면 통화정책의 정밀 타격이 가능해진다. 스마트 계약(Smart Contract)을 통해 시장 금리 변동성이나 유동성 상황에 따라 자동으로 자금을 공급하거나 흡수하는 방식이다. IMF는 “24시간 365일 가동되는 토큰화 시장 환경에 맞춰, 중앙은행의 정책 도구 역시 자동화되고 실시간으로 작동하는 형태로 진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韓銀 등 주요국 ‘선택의 시간’ 다가와
IMF는 각국 중앙은행에 “더 이상 관망만 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보고서는 중앙은행의 대응 전략으로 ▲단순 관망(Inaction) ▲주시(Wait and see) ▲기반 조성(Enablement) ▲촉매제(Catalyst) 등 4단계를 제시하며, 각국의 역량과 시장 상황에 맞는 능동적 접근을 주문했다.
이는 한국은행을 비롯한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진행 중인 CBDC 프로젝트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단순히 현금을 디지털로 바꾸는 것을 넘어, 암호화폐 및 토큰화된 자산 시장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중앙은행 화폐가 어떻게 ‘기축 통화’로서의 경쟁력을 유지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IMF는 “토큰화된 준비금은 단순한 기술 실험이 아니라, 안전하고 효율적인 도매 결제 시스템을 위한 필수적인 진화”라며 “다만 도입 방식(원장 모델 등)은 각국의 법적·제도적 환경에 맞춰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