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 법원이 테라폼랩스(Terraform Labs) 공동창업자 도권(Do Kwon)에게 징역 15년형을 선고하며, 2022년 전 세계 암호화폐 시장을 붕괴 직전까지 몰고 갔던 테라·루나 사태가 법적으로 하나의 종착점에 도달했다. 이번 판결은 단순한 금융 범죄 사건의 마무리가 아니다. 수백 건에 달하는 피해자 증언이 실제 양형 판단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 사례로, 향후 디지털 자산 관련 사법 판단의 기준점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이번 재판에서 검찰이 제출한 핵심 자료 중 하나는 총 315건의 피해자 영향 진술서(Victim Impact Statements)였다. 재판부는 이 진술서들이 단순한 참고 자료를 넘어, 사건의 실질적 성격과 피해 규모를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판단했다. 수치와 통계로 환산되지 않는 피해의 무게가 법정에 그대로 전달된 셈이다.
기술 실패가 아닌 신뢰 붕괴로 규정된 사건
테라 사태는 오랫동안 알고리즘 스테이블코인의 구조적 실패, 혹은 시장 변동성에 따른 실험적 프로젝트의 좌초로 설명돼 왔다. 그러나 이번 재판에서 미국 법원이 규정한 사건의 본질은 명확히 달랐다. 재판부는 이 사건을 단순한 기술 실패가 아니라, 투자자에게 잘못된 안정성과 신뢰를 지속적으로 주입한 구조적 기만 행위로 판단했다.
검찰은 도권이 테라USD(UST)의 안정성에 대해 시장에 과도한 확신을 심어줬고, 알고리즘 구조가 가진 취약성과 붕괴 가능성을 축소하거나 사실상 은폐했으며, 내부적으로 리스크를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이를 투자자에게 공유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이 주장의 상당 부분을 받아들였고, 그 결과 이번 사건은 시장 리스크를 감수한 투자 실패가 아니라 정보 비대칭을 기반으로 한 사기 사건으로 성격이 규정됐다.
숫자가 아닌 삶의 붕괴를 증언한 피해자들
이번 판결에서 가장 상징적인 장면은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법정에서 실질적 판단 요소로 작동했다는 점이다. 제출된 피해자 진술서에는 단순히 얼마를 잃었는지를 나열한 내용이 아니라, 테라 붕괴 이후 삶이 어떻게 무너졌는지가 구체적으로 기록돼 있었다.
일부 피해자는 수십만 달러에 이르는 투자 손실 이후 극심한 스트레스로 건강이 급격히 악화됐고,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불가능해졌다고 밝혔다. 또 다른 피해자는 전 재산에 가까운 금액을 잃은 뒤 직장을 유지하지 못했고, 장기간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겪으며 일상 자체가 붕괴됐다고 증언했다. 가족의 생계 자금을 투자했다가 손실을 입으면서 가정이 해체됐다는 사례도 포함돼 있었고, 지인이 투자 실패 이후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사실을 경찰 보고서와 함께 제출한 진술서도 있었다.
이들 증언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표현은 ‘금전적 손실’이 아니라 ‘신뢰의 배신’이었다. 피해자들은 단순히 시장의 변동성에 베팅했다기보다, 안정적이라고 설명된 시스템과 그 시스템을 설계한 인물에 대한 신뢰를 기반으로 투자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그 신뢰가 무너진 순간, 손실은 숫자를 넘어 삶 전반을 파괴하는 결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은 미국에 국한되지 않았다. 한국을 포함해 유럽, 터키, 북마케도니아 등 다양한 국가에서 피해자들이 진술서를 제출했고, 이는 테라 사태가 특정 지역의 사건이 아닌 글로벌 차원의 구조적 사고였음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켰다.
“이 고통은 추상적이지 않다”는 법원의 판단
재판 과정에서 판사는 피해자 진술서를 직접 검토하며, 일부 내용은 판결문에 명시적으로 반영했다. 재판부는 피해자들이 겪은 고통을 추상적인 금융 손실이나 일시적 투자 실패로 보지 않았다. 오히려 장기간 지속되는 정신적·사회적 피해로 규정하며, 형량 산정 과정에서 중요한 고려 요소로 삼았다.
미국 형사 사법 체계에서 피해자의 실질적 피해 정도는 양형 판단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번 사건에서도 검찰이 요청한 중형이 받아들여진 배경에는 전체 피해 규모뿐 아니라, 피해가 개인의 삶에 미친 질적 영향이 자리하고 있었다.
도권 측은 일부 피해 회복 가능성과 선처를 요청하는 자료를 제출하며 감형을 시도했지만, 법원은 피해 회복의 실질성이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그 결과 선고된 징역 15년형은 미국 내 암호화폐 관련 사기 사건 중에서도 상당히 무거운 판결로 평가된다.
이번 판결이 암호화폐 시장에 남긴 경고
이번 판결은 암호화폐 산업 전반에 명확한 메시지를 던진다. 기술적 실험이라는 명분은 사기 혐의의 면죄부가 될 수 없으며, 글로벌 프로젝트일수록 미국 사법권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점이 분명해졌다. 무엇보다도 투자자들의 집단적 증언은 상징적 항의에 그치지 않고, 실제 법적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피해자 영향 진술서가 이처럼 비중 있게 다뤄진 사례는 향후 디지털 자산 및 블록체인 프로젝트 관련 형사 사건에서 중요한 선례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향후 창업자와 프로젝트 운영자들에게도 명확한 경고로 해석된다.
국내 테라·루나 피해자 간증 접수 안내
토큰포스트는 테라·LUNA 사태로 피해를 입은 국내 투자자들의 실제 피해 사례와 간증을 접수받고 있다. 접수된 내용은 향후 심층 보도, 피해 구조 분석, 투자자 보호 관련 콘텐츠 제작에 활용될 예정이다.
▶ 국내 피해자 간증 접수 폼: https://forms.gle/bKLfCYHZTekvxCMd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