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여 년간 암호화폐 업계의 가장 큰 슬로건은 "은행 계좌가 없는 이들에게 금융을(Banking the Unbanked)"이었다. 비트코인과 스테이블코인은 국경을 넘어 돈을 '보내는' 문제를 혁신적으로 해결했다. 하지만 코인베이스(Coinbase)와 브라이언 암스트롱 CEO는 이제 더 근본적이고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돈을 보내는 것만으로 충분한가? 그 돈을 불릴 기회는 누구에게 있는가?"
이번 연재의 첫 번째 순서에서는 코인베이스 연구소(Coinbase Institute)의 보고서 From the Unbanked to the Unbrokered를 바탕으로, 전 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노동 소득과 자본 소득의 격차, 그리고 자본 시장에서 소외된 40억 명의 '언브로커드(Unbrokered)'가 직면한 현실을 분석한다.
땀의 가치 vs 자본의 속도: 57%와 136%의 차이
현대 경제 시스템에서 "성실하게 일해서 저축하면 부자가 된다"는 명제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수 있다. 데이터는 자본을 소유한 자와 노동만을 제공하는 자 사이의 격차가 구조적으로 벌어지고 있음을 증명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40년(1987년 이후) 동안 미국의 노동 소득(Labor Income)은 약 57% 성장하는 데 그쳤다. 반면, 같은 기간 자본 소득(Capital Income)은 무려 136% 급증했다. 이는 기술 발전, 자동화, 그리고 AI의 도입이 생산성을 높였지만, 그 과실이 노동자가 아닌 자본 소유자(주주, 자산가)에게 집중되었음을 시사한다.
문제는 이러한 '자본 소득'이 부의 축적과 계층 이동을 위한 가장 강력한 엔진이 되었다는 점이다. 이 엔진에 탑승하지 못한 채 오로지 임금에만 의존하는 사람들은 수학적으로 뒤처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언뱅크드'보다 심각한 '언브로커드(Unbrokered)'의 비극
우리는 흔히 은행 계좌가 없는 14억 명의 '언뱅크드(Unbanked)'에 주목해 왔다. 하지만 코인베이스는 이보다 훨씬 더 거대한 집단인 40억 명의 '언브로커드(Unbrokered)'를 조명한다.
'언브로커드'란 은행 계좌가 있더라도 주식이나 채권 같은 자본 시장에 접근할 수 없는 사람들을 뜻한다. 전 세계 성인의 약 3분의 2가 이 범주에 속한다. 이들은 저축을 해도 인플레이션 헷지 수단이 없어 구매력을 잃거나, 낮은 이자의 예금 계좌에 자산을 방치해야만 한다.
"지리적 위치와 환경이 아니라, 재능과 의지가 자본 접근성을 결정해야 한다. 현재 시스템은 불공정할 뿐만 아니라, 엄청난 인간의 잠재력을 낭비하고 있다." – 브라이언 암스트롱 (Coinbase CEO)
보이지 않는 장벽: 왜 그들은 엔비디아를 살 수 없는가?
그렇다면 왜 40억 명은 글로벌 자본 시장에 진입하지 못하는가? 단순히 돈이 없어서가 아니다. 전통 금융 시스템(TradFi)이 가진 구조적 비용과 비효율성 때문이다.
높은 고정 비용과 진입 장벽: 기존 금융 인프라는 규제 준수(KYC/AML), 수탁, 정산 등 복잡한 중개 과정을 거친다. 금융 기관 입장에서 100달러 미만의 소액 계좌를 유지하는 것은 수익성이 없으므로, 아예 특정 국가나 계층의 가입을 막는 '디리스킹(De-risking)'을 선택한다.
홈 바이어스(Home Bias)의 덫: 투자자들은 본능적으로 자국 자산에 투자하는 경향(Home Bias)이 있다. 문제는 자국 시장이 작거나 불안정한 개발도상국 투자자들이다. 예를 들어, 전 세계 주식 시장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압도적이지만, 많은 국가의 투자자들은 자국 시장에 90% 이상의 자산을 묶어두고 있다. 이는 포트폴리오 다각화 실패와 리스크 노출로 이어진다.
물리적, 규제적 고립: 나이지리아의 한 소액 투자자가 미국의 우량주(예: 엔비디아, 마이크로소프트)를 사려 한다면, 환전 수수료, 중개 수수료, 그리고 복잡한 신원 인증 절차라는 삼중고에 직면한다. 결국 이 장벽은 부유층에게는 '게이트웨이'가 되지만, 서민들에게는 넘을 수 없는 '가드레일'이 된다.
자본의 민주화, 기술이 답하다
현재의 금융 시스템은 "가진 자는 더 쉽게 벌고, 없는 자는 기회조차 박탈당하는" 구조를 고착화하고 있다. 자본 소득이 노동 소득을 압도하는 시대에, 자본 시장 접근권(Access)은 단순한 금융 서비스가 아니라 생존과 계층 이동을 위한 필수 권리다.
코인베이스는 이 문제를 해결할 열쇠로 '토큰화(Tokenization)'와 '무허가성 블록체인(Permissionless Blockchain)'을 제시한다. 전통 자산을 블록체인 위로 올려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추고, 누구나 스마트폰 하나로 글로벌 우량 자산의 주주가 되게 하는 것. 이것이 코인베이스가 그리는 '언브로커드'의 해법이다.
(다음 2편에서는 RWA와 토큰화 기술이 어떻게 월스트리트의 장벽을 허물고 비용 구조를 혁신하는지, 구체적인 기술적·경제적 원리를 분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