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 달러로도 스타트업 인수는 이제 역부족이다. 불과 3년 전만 해도 미국 내 최고 가치의 비상장 스타트업 100곳을 통째로 사들이는 데 필요한 금액이 1조 달러 수준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최근 스페이스X와 xAI의 합병으로 만들어진 신생 거대기업 하나만 인수하려 해도 최소 1조 2,500억 달러(약 1,800조 원)가 필요할 정도로 벤처 창업 기업의 기업가치가 폭등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포지(Forge)의 집계에 따르면, 현재 기준으로 미국 최고 가치 스타트업 100곳을 전부 인수하려면 약 3조 5,000억 달러(약 5,040조 원)에 달하는 자금이 필요하다. 이는 유니콘 밸류에이션의 인플레이션 시대를 상징하는데, 유망 스타트업들의 고평가 추세가 예상을 뛰어넘어 가파르게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스페이스X가 최근 일론 머스크(Elon Musk)의 인공지능 기업 xAI를 인수하며 합병 법인의 기업가치를 1조 2,500억 달러로 끌어올린 점이 있다. 이는 연내 상장을 염두에 둔 행보로 해석된다. 한편, 생성형 AI 선두주자 오픈AI(OpenAI)는 7500억 달러 이상의 밸류에이션을 목표로 1,000억 달러(약 144조 원) 규모의 자금 조달을 추진 중이다. 경쟁 기업인 앤스로픽(Anthropic)은 이미 100억 달러를 유치했으며, 총 200억 달러 이상을 추가로 확보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이 회사는 올해 초 3,500억 달러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았다.
AI와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데이터브릭스(Databricks)는 최근 1340억 달러의 밸류에이션으로 50억 달러의 신규 투자를 유치했다. 동시에 연간 매출 기준 54억 달러 이상의 실적도 공개되며 투자자들의 기대를 높였다. 무인 운전 기술 기업 웨이모(Waymo) 역시 160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유치, 1260억 달러의 기업가치를 새롭게 인정받았다. 결제 플랫폼 스트라이프(Stripe)는 1년 전 기준으로도 이미 915억 달러에 달하는 무게감 있는 가치 평가를 받은 바 있다.
이른바 ‘차세대 유니콘’ 그룹에서도 가치 상승이 두드러진다. 블록체인 기업 리플(Ripple)은 지난해 11월 500억 달러의 투자로 400억 달러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았고, 범용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 업체 피겨(Figure)는 39억 달러 밸류를 기록했다. 자동화 금융 플랫폼 램프(Ramp)는 불과 수개월 만에 225억 달러에서 320억 달러로 평가가 치솟았고, ‘안전한 초지능’을 표방하며 주목받는 Safe Superintelligence는 20억 달러의 자금 유치와 함께 320억 달러의 기업가치를 기록했다.
국방 기술 분야 유망주인 안두릴 인더스트리즈(Anduril Industries)는 25억 달러를 유치하며 305억 달러 밸류를 확보했고, AI 반도체 기업 세레브라스 시스템즈(Cerebras Systems)는 최근 10억 달러 규모의 자금 조달과 함께 기업가치 약 230억 달러에 도달했다. 암호화폐 거래소 크라켄(Kraken)도 유사한 시기 밸류에이션을 200억 달러로 끌어올렸다.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이들 기업 중 다수가 최근 6개월에서 1년 사이에 새로운 정점을 찍었다는 사실이다. 스페이스X는 1년 전만 해도 3,500억 달러 수준이었고, 오픈AI는 불과 14개월 전 1,570억 달러의 평가를 받았다. 지금과 비교하면 마치 다른 시대의 수치처럼 느껴질 정도다.
이 같은 평가 급등세는 IPO 시장의 재개 가능성과 가속화되는 AI, 국방, 핀테크 등 신산업 부문의 선도 기업 선점 경쟁이 맞물린 결과로 분석된다. 향후 이 수준의 밸류에이션이 얼마나 지속될지는 여전히 불확실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단기가치 조정이 불가피하다는 목소리가 커졌던 1~2년 전 시장 예측은 지금까지는 완전히 빗나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