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 때는 소수점 둘째 자리까지 공시했고, 팔 때는 아무것도 알리지 않았다. 토큰포스트 분석 팀이 비트맥스 1,400억 거래 구조를 공시와 온체인 데이터로 추적했다. [편집주]
비트맥스가 비트코인을 살 때마다 공시를 냈다. 수량은 소수점 둘째 자리까지, 날짜와 단가까지 기재했다. 국내 상장사 중 비트코인 보유량 1위라는 타이틀은 그 공시들이 쌓여 만들어진 것이었다. 투자자들은 그 숫자를 믿고 주식을 샀다.
그런데 블록체인에는 또 다른 기록이 남아 있었다.
온체인에서 포착된 이상 신호
2026년 3월, 매일경제 단독 보도가 나왔다. 비트맥스 추정 지갑에서 2026년 1월 15일부터 2월 5일 사이, 550여 개의 비트코인이 OKX·비트겟·바이낸스·바이비트 등 해외 거래소 4곳으로 분산 전송됐다는 내용이었다.
전송 패턴이 눈에 띈다. 100개 또는 50개 단위로 규칙적으로 나뉘어 복수의 거래소로 분산됐다. 크립토 시장에서 이런 패턴은 낯설지 않다. 대량 물량을 한 거래소에서 한꺼번에 처분하면 호가창을 흔들어 슬리피지가 커진다. 이를 피하기 위해 거래소를 나누고 수량을 쪼개는 방식은 기관급 매도에서 흔히 관찰된다. 블록체인 전문가들이 이 전송을 "체계적 매도 정황"으로 해석한 근거다.
물론 거래소로의 전송이 곧 매도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보관 목적이나 담보 활용을 위한 이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비트맥스 측의 해명은 의문을 해소하기보다 오히려 키웠다. 회사는 "비트코인은 여전히 보유 중이나 구체적인 이유는 확인이 어렵다"고 답했다. 자사 보유 자산의 이동 경위를 회사 스스로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지갑이 특정된 경위, 공시가 단서가 됐다
비트맥스 추정 지갑이 어떻게 역추적됐는지를 이해하면, 이 사안의 아이러니가 선명해진다.
비트맥스는 코인을 매수할 때마다 수량을 소수점 둘째 자리까지 공시했다. 예컨대 "비트코인 28.1109개 양수"처럼 정밀한 수치가 공개됐다. 블록체인은 모든 거래를 공개 장부에 기록한다. 특정 시점에 특정 수량이 이동한 트랜잭션을 공시 수치와 대조하면 지갑 주소를 좁혀나갈 수 있다. 투명성을 강조하기 위해 공개한 매입 기록이 역설적으로 추적의 단서가 된 셈이다.
이는 단순한 기술적 우연이 아니다. 온체인 데이터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공시 수치와 블록체인 데이터를 교차 검증하는 방식은 크립토 시장 분석에서 이미 표준적인 접근법이다. 비트맥스가 공시를 꼼꼼하게 낼수록, 그 지갑은 더 쉽게 특정될 수 있는 구조였다.
DAT 전략의 전제가 흔들린다
비트맥스의 투자 명분은 DAT(디지털 애셋 트레저리) 전략이었다. 미국의 스트래티지, 일본의 메타플래닛처럼 비트코인을 핵심 자산으로 보유해 기업 가치를 높이겠다는 모델이다. 국내에서 처음 시도된 이 전략의 핵심 전제는 하나다. 회사가 비트코인을 장기 보유한다는 것.
스트래티지가 시장의 신뢰를 얻은 것은 매입 공시뿐 아니라 보유 지속성에 있었다. 단기 매매가 아닌 장기 트레저리 자산으로서의 비트코인이라는 서사가 주가 프리미엄의 근거였다.
비트맥스 추정 지갑에서 550여 개의 비트코인이 해외 거래소로 이체된 정황은 이 전제에 정면으로 의문을 제기한다. 전송이 보관 목적이라면 왜 국내가 아닌 해외 거래소 4곳으로 분산됐는지, 담보 목적이라면 왜 공시가 없었는지가 설명되지 않는다. 투자자들이 기대한 것은 장기 보유하는 비트코인이었는데, 그 비트코인의 현황을 공식적으로 확인할 방법이 없어진 것이다.
살 때는 공개, 팔 때는 의무 없다
이 사안의 구조적 핵심은 공시 제도의 비대칭에 있다.
현행 자본시장법상 가상자산 매도에 대한 별도 공시 의무는 없다. 자기자본의 10% 이상 자산 양수도에 해당할 경우 공시 의무가 생기지만, 가상자산 가격 하락 국면에서 매도 금액이 그 기준 아래로 설계될 경우 사각지대가 생긴다. 550개를 한꺼번에 처분하지 않고 100개·50개씩 복수의 거래소로 나눠 전송한 패턴은 이 구조와 무관하지 않다는 시각이 있다.
비트맥스는 코인을 살 때마다 자발적으로 공시했다. 그 공시는 주가에 호재로 작용했다. 반면 코인의 이동이나 처분에 대해서는 법적 공시 의무가 없었다. 매입 정보는 공개되고, 매도 정보는 공개되지 않는 구조에서 투자자는 항상 불완전한 정보를 갖게 된다.
금융위원회는 올해부터 법인의 가상자산 거래를 단계적으로 허용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거래 허용 범위를 넓히는 것과 공시 의무를 정비하는 것은 별개의 과제다. 거래만 열어주고 공시 규정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이번과 같은 정보 비대칭 구조는 오히려 더 넓은 무대에서 반복될 수 있다.
블록체인이 공시보다 먼저 말했다
비트맥스 사태에서 온체인 데이터는 공시보다 먼저 자산 이동 정황을 드러냈다. 규제 당국이나 투자자가 아닌, 누구나 접근 가능한 공개 장부가 먼저 신호를 보낸 것이다.
이것이 크립토 시장과 전통 자본시장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생기는 새로운 문제다. 전통 공시 제도는 기업이 스스로 정보를 공개하는 것을 전제로 설계돼 있다. 그러나 블록체인 기반 자산은 기업의 공시 여부와 관계없이 온체인에 흔적을 남긴다. 공시 제도가 이 간극을 메우지 못하는 한, 투자자는 규제 당국의 공시보다 온체인 데이터에 먼저 의존해야 하는 역설적 상황에 놓인다.
비트맥스의 550 BTC 전송은 그 간극이 실제 투자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다.
다음 편에서는 관리종목 지정부터 거래정지까지의 타임라인, 그리고 이 구조가 반복될 수 있는 제도적 조건을 다룬다.
[비트맥스 ③] 남은 것은 거래정지와 주주 손실—그리고 이 구조는 반복될 수 있다
본 기사는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공시, 관련 언론 보도, 공개된 블록체인 온체인 데이터를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 비트코인 전송의 목적은 현재까지 공식 확인되지 않았으며, 이 기사는 확인된 공시 및 온체인 데이터에 근거한 사실 보도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