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크립토 시장에서 자주 들리는 단어 중 하나가 'Cabal'이다. 원래 Cabal은 정치나 사회에서 소수의 사람들이 비공식적으로 결속해 서로의 이익을 밀어주는 집단을 뜻한다. 역사적으로는 '비밀 정치 파벌'이나 '작은 권력 네트워크'를 의미하며, 내부 인맥과 영향력을 통해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네트워크 가리킨다.
크립토 업계에서 Cabal은 음모 조직을 뜻하기보다는, 투자자·창업자·인플루언서·거래소 관계자들이 서로 연결된 네트워크를 의미한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a16z가 초기 투자한 프로젝트에 Paradigm이 후속 투자를 이어가고, Coinbase가 상장을 지원하며, 유력 인플루언서와 커뮤니티가 내러티브를 확산시킨다. 각자가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오랜 신뢰 관계로 연결된 네트워크가 함께 작동하는 것이다. 결국 Cabal은 단순한 인맥을 넘어 "성공 확률을 높여주는 생태계"라고 볼 수 있다.
문제는 한국 크립토 스타트업에게 이러한 Cabal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Kakao, Dunamu, Hashed 같은 국내 주요 기업들의 네트워크가 존재하지만, 이는 국내 시장 중심으로 작동한다. 글로벌 투자자, 거래소, 커뮤니티와 유기적으로 연결된 네트워크는 아직 얇다. 글로벌 크립토 시장에서 한국 팀이 투자와 네트워크 측면에서 어려움을 겪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첫째, 성공한 선례가 부족하다. 벤처캐피털은 본질적으로 패턴을 따라 투자한다. 특정 학교나 기업 출신 창업자가 성공하면, 같은 배경의 창업자에게 투자가 이어진다. 하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크립토 프로젝트가 대규모 성공을 거둔 사례는 많지 않다. 선례가 부족하면 투자도 줄어든다. 결국 첫 투자부터가 어려워지는 구조다.
둘째, 글로벌 네트워크의 중심에 있지 않다. 실리콘밸리나 미국 대학 네트워크에서는 창업자, 투자자, 개발자가 서로 긴밀히 연결돼 있다. 한 창업자가 회사를 만들면 이전 동료들이 합류하고, 투자자는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하지만 한국 창업자들은 이 네트워크 밖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다. 투자, 인재, 파트너십을 모두 스스로 찾아야 한다.
셋째, 시장과 커뮤니티의 중심이 영어권에 있다. 크립토 시장의 담론은 대부분 글로벌 커뮤니티에서 형성된다. 프로젝트가 성공하려면 단순히 기술만으로는 부족하고, 커뮤니티와 내러티브를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많은 한국 프로젝트는 기술 중심 개발에는 강하지만 글로벌 커뮤니티 형성에서는 상대적으로 약하다.
넷째, 규제 환경이 글로벌 투자자들의 진입을 막는다. 한국 법인에 투자하려면 외국환거래법상 신고 의무, 복잡한 세무 구조, 가상자산 관련 불확실한 규제 환경을 감수해야 한다. 글로벌 투자자 입장에서는 "왜 굳이 한국 법인에 투자해야 하지?"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비슷한 팀이 싱가포르나 케이맨 법인으로 설립되어 있다면, 투자자는 망설임 없이 그쪽을 선택한다. 결국 많은 한국 창업자들이 글로벌 투자를 받기 위해 법인을 해외로 옮기는 선택을 강요받는다. 이는 네트워크와 인재가 국내에 축적되지 않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한국에도 Cabal을 만들 수 있을까. 단순히 폐쇄적 인맥을 만들자는 뜻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지속 가능한 네트워크"다.
첫째, 창업자 네트워크를 강화해야 한다. 성공한 창업자가 다음 창업자를 돕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 클라우드 시대 초기 Dropbox 창업자 Drew Houston이 후배 창업자들에게 네트워크와 조언을 제공하며 실리콘밸리 생태계를 확장했던 것처럼, 한국에서도 먼저 성공한 창업자가 다음 주자를 끌어올리는 문화가 필요하다.
둘째, 글로벌 커뮤니티와 연결된 투자 생태계가 필요하다. 한국 투자사들이 국내 프로젝트에만 투자하는 구조를 넘어, a16z이나 Paradigm 같은 글로벌 크립토 전문 펀드와 공동 투자를 늘려야 한다. 공동 투자는 단순한 자금 조달을 넘어 글로벌 네트워크에 편입되는 가장 빠른 경로다.
셋째, 한국 프로젝트의 글로벌 성공 사례를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한다. 한두 개의 글로벌 성공 사례만 등장해도 시장의 인식은 크게 바뀐다. 투자도, 인재도, 네트워크도 그때부터 따라온다. 이를 위해 유망한 초기 프로젝트를 선별해 글로벌 런칭, 커뮤니티 빌딩, 해외 투자자 연결까지 패키지로 지원하는 민관 협력 프로그램이 실질적인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결국 Cabal의 본질은 음모나 비밀 조직이 아니라 신뢰와 네트워크의 축적이다. 글로벌 기술 산업에서 성공한 지역은 모두 강한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었다. 크립토 산업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이 진정한 글로벌 플레이어가 되려면 기술뿐 아니라 사람과 네트워크의 생태계를 함께 키워야 한다. 결국 혁신을 만드는 것은 기술만이 아니라 신뢰로 연결된 사람들의 네트워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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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크립토 스타트업은 글로벌 신뢰 네트워크(Cabal)가 부족해 투자·커뮤니티·파트너십에서 불리하므로, 창업자 네트워크와 글로벌 공동 투자 생태계를 키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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