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록은 ‘2026년 2분기 주식시장 전망’ 보고서에서 올해 들어 글로벌 증시의 핵심 흐름으로 반전(reversal), 순환(rotation), 재조정(recalibration)을 제시했다. 지난해까지 시장을 압도했던 미국 대형 기술주 일변도 장세가 다소 누그러지고, 업종·스타일·지역 간 자금 이동이 빨라지고 있다는 의미다.
보고서는 특히 AI 투자 서사가 기존의 단순 성장 기대에서 보다 정교한 옥석 가리기 국면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봤다. 시장이 이제는 단순히 AI 관련 여부가 아니라 수익 귀속 구조, 비용 부담 주체, 마진의 지속 가능성, 경쟁 심화에 따른 사업모델 훼손 가능성까지 따져 보고 있다는 설명이다. 블랙록은 이를 두고 AI 기대가 약화한 것이 아니라, 시장의 평가 기준이 한층 높아진 결과라고 해석했다.
이 같은 변화는 미국 증시 내부의 시장 확장 기대와도 맞물린다. 블랙록에 따르면 2023년부터 2025년까지 ‘매그니피센트 7’의 수익률은 222%에 달한 반면, 나머지 S&P500 종목 수익률은 52%에 그쳤다. 그러나 올해 초 들어서는 동일가중 S&P500 지수가 시가총액가중 지수를 앞서기 시작했다. 상위 10개 종목에 과도하게 집중됐던 시장 수익률 기여가 다른 업종과 종목으로 분산될 가능성을 보여주는 신호라는 분석이다.
연초 업종 흐름도 달라졌다. 최근 수년간 시장을 이끈 기술주와 커뮤니케이션 서비스 대신 에너지와 소재가 상대 강세를 보였다. 블랙록은 이를 단순한 단기 수급 변화가 아니라, 향후 실적 개선의 폭이 보다 넓은 영역으로 퍼질 수 있다는 기대가 반영된 결과로 해석했다. 기술, 특히 소프트웨어 업종은 AI 파괴 우려로 조정을 받았고, 지정학 변수로 유가가 상승하면서 에너지주가 수혜를 입었다는 설명이다.
블랙록은 미국 시장에서 주목할 만한 축으로 가치주와 배당주, 그리고 전통적 반도체 외 AI 수혜주를 꼽았다. 가치주는 현재 시장 대비 할인 폭이 43%에 이르러 장기 중간값인 19%를 크게 웃돌고 있다. 블랙록은 이 같은 괴리가 축소될 경우 가치주의 재평가 여지가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배당주의 경우에도 금리 인하 기대가 커질수록 채권 대비 상대 매력이 부각될 수 있다고 봤다.
AI 투자 기회 역시 반도체에만 머물지 않는다고 진단했다. 블랙록은 헬스케어를 대표적 사례로 들었다. 영상 판독, 진단, 문서화 등에서 AI 활용이 이미 성숙 단계에 접어들었고, 병원·보험사·의료기기 기업 중심으로 실제 매출 증대 효과가 가시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시장의 관심이 초기 인프라 수혜주를 넘어 실질적 생산성 개선 업종으로 옮겨갈 수 있다는 의미다.
해외 시장에서는 유럽과 일본, 일부 신흥국이 대안 투자처로 제시됐다. 유럽에서는 방산과 은행 업종이 대표적인 가치 구간으로 꼽혔다. 블랙록은 유럽 방산주가 최근 3년간 큰 폭으로 올랐지만, 이익 증가율을 감안한 밸류에이션은 여전히 미국 방산주보다 낮다고 평가했다. 유럽 은행주 역시 최근 수년간 상승세를 이어왔지만, 주가수익비율 기준으로는 여전히 장기 평균을 밑돌고 미국·일본 은행주 대비 저평가 상태라는 분석이다.
영국 시장도 분산 투자 대안으로 거론됐다. 블랙록은 영국 FTSE100 지수가 대형 기술주나 순수 AI 종목 없이도 지난해 미국 증시를 5%포인트 이상 웃도는 성과를 냈다고 짚었다. 은행과 광업 비중이 큰 시장 구조상 미국 기술주 집중 포트폴리오의 균형을 맞추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에 대해서는 정책과 기업지배구조 변화, 실적 모멘텀이 동시에 작동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블랙록은 2월 총선 이후 친성장·친투자 성향의 정부가 들어서면서 AI, 방위, 에너지 등 전략 산업에 대한 재정 지원 기대가 강화됐다고 진단했다. 일본은행의 금리 인상 기조에도 실질금리가 여전히 낮은 수준에 머물러 금융 여건이 급격히 위축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봤다. 여기에 도쿄증권거래소를 중심으로 자본 효율성과 주주환원 개선 요구가 이어지면서 일본 기업의 체질 개선이 주가를 떠받치는 구조라는 설명이다.
신흥국 중에서는 브라질을 유력 후보로 들었다. 블랙록은 신흥국 전반의 밸류에이션이 20년 평균을 웃도는 반면, 브라질은 오히려 평균 대비 할인 구간에 있다고 분석했다. 경기 선행지표 개선과 함께 올해 금리 인하 가능성이 커지면서 소매·금융 등 내수 업종에 우호적인 환경이 조성될 수 있다는 전망이다. 이는 AI 하드웨어 수혜주 비중이 높은 한국·대만 중심 신흥국 시장과는 결이 다른 투자 기회로 해석된다.
다만 블랙록은 낙관론만을 경계했다. AI 관련 종목 쏠림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고, 글로벌 증시 전반의 밸류에이션 부담도 높은 수준이며, 지정학 리스크 역시 상존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블랙록은 이런 환경에서는 단순 지수 추종보다 지역·업종·스타일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액티브 운용의 중요성이 커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