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크런치베이스 유니콘 보드에 새로 이름을 올린 기업은 총 29곳이었다. 눈에 띈 건 새로운 AI 모델 경쟁보다 기업 현장에 AI를 실제로 심는 ‘배치’ 사업이 급부상했다는 점이다. 투자자들의 관심이 기술 시연을 넘어 수익화 가능한 적용 영역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는 뜻이다.
오픈AI와 앤스로픽은 각각 수십억달러 규모의 AI 도입 전문 벤처를 띄우며 시장 흐름을 주도했다. 오픈AI는 ‘포워드 디플로이드 엔지니어’를 앞세운 오픈AI 디플로이먼트 컴퍼니를 통해 40억달러를 유치했고, 기업가치는 140억달러로 평가됐다. 원화로는 약 21조3290억원 수준이다. 앤스로픽도 클로드를 기업 운영에 접목하는 합작법인에 15억달러를 끌어왔다.
이 같은 흐름은 AI 인프라와 자율형 소프트웨어, 로보틱스 전반으로 확산됐다. AI 에이전트용 검색 기업 엑사(Exa)는 2억5000만달러를 조달하며 22억달러 기업가치에 도달했고, 자율형 소프트웨어 개발사 블리치는 2억달러 투자로 14억달러 가치를 인정받았다. 여러 AI 모델 가운데 최적의 모델을 연결해주는 오픈라우터(OpenRouter)도 13억달러 기업가치로 유니콘에 올랐다.
로보틱스는 중국, 양자는 캐나다가 존재감
산업별로 보면 로보틱스 분야에서는 중국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중국 광둥의 톈지는 양팔 로봇 개발을 앞세워 14억7000만달러를 조달했고, 상하이의 애질링크는 정교한 로봇 손 기술로 10억달러 가치에 도달했다. 중국 푸둥의 로봇 임대 플랫폼 봇셰어도 설립 1년도 되지 않아 유니콘 반열에 합류했다.
반면 양자컴퓨팅 분야에서는 캐나다가 강세를 보였다. 밴쿠버의 포토닉은 실리콘 기반 큐비트와 광 연결 기술을 결합해 20억달러 가치를 인정받았고, 퀘벡의 노르드 퀀티크도 14억달러 평가를 받았다. 헬스케어와 항공우주, 금융, 제조, 전자상거래, 에너지 등에서도 고르게 신규 유니콘이 나왔다.
국가별로는 미국 기업이 17곳으로 가장 많았고, 중국과 영국이 각각 4곳씩이었다. 캐나다는 2곳, 인도와 브라질은 각각 1곳이었다. 브라질에서는 상파울루 기반 AI 법률 플랫폼 엔터가 유일한 리걸테크 유니콘으로 새로 합류했다.
유니콘 보드 9.9조달러… IPO 변수도 커져
크런치베이스에 따르면 5월 말 유니콘 보드 전체 가치는 9조9000억달러까지 불어났다. 다만 대형 비상장사의 몸값 상승과 IPO가 동시에 이어지며 변동성도 커지고 있다. 특히 앤스로픽은 최근 자금 조달 이후 오픈AI를 제치고 스페이스X에 이어 두 번째로 가치가 높은 비상장 기업으로 올라섰다. 이어 비공개 IPO 신청도 진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오픈AI 역시 뒤이어 상장 절차에 들어가며 AI 대형주들의 기업공개 기대가 커지고 있다. 여기에 일론 머스크(Elon Musk)가 이끄는 스페이스X의 상장까지 현실화하면 유니콘 보드 가치의 10% 이상이 한 번에 빠질 수 있다. 반도체 기업 세레브라스는 지난 5월 564억달러 가치로 상장해, 불과 3개월 전 비상장 가치 230억달러를 크게 웃돌았다.
크립토도 존재감… GSR, 은행권 연결 고리 부상
가상자산 분야에서는 디지털자산 트레이딩 업체 GSR이 1억5000만달러 투자 유치와 함께 10억달러 기업가치를 인정받았다. 투자에는 영국 스탠다드차타드의 핀테크 부문 SC벤처스가 참여했다. 이번 거래는 전통 금융권이 디지털자산 시장과 연결되는 상징적 사례로 평가된다.
암호화폐 시장 자체가 이번 유니콘 명단의 중심은 아니었지만, AI와 함께 금융 인프라의 경계가 흐려지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대목이다. 특히 기관투자자들은 비트코인(BTC)이나 이더리움(ETH) 같은 자산 가격 자체보다, 디지털자산을 실제 금융 시스템에 편입시키는 플랫폼과 거래 인프라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새 유니콘의 핵심은 ‘기술’보다 ‘적용’
이번 명단에서 확인된 공통점은 분명하다. 투자금은 더 이상 ‘무엇을 만들 수 있나’보다 ‘어디에 바로 쓸 수 있나’로 이동하고 있다. AI는 기업 현장 배치, 로봇은 실제 작업 자동화, 양자는 상용화 접근성, 크립토는 제도권 금융 연계가 핵심 키워드로 떠올랐다.
결국 5월 유니콘 시장은 첨단 기술의 가능성보다 ‘현실 적용력’이 몸값을 결정한 한 달로 해석된다. 시장이 고평가 논란 속에서도 자금을 쏟아붓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실제 수요와 연결되는 기술은 여전히 가장 비싼 프리미엄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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