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가 미국주식예탁증서 공모가를 주당 149달러로 확정하면서, 한국 반도체 기업의 미국 자본시장 조달이 이례적인 흥행 성과를 냈다. 일반적으로 대형 기업공개는 투자자 모집을 위해 기존 주가보다 할인된 가격을 제시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번에는 오히려 시장 가격보다 높은 수준에서 가격이 정해졌다는 점이 가장 눈에 띈다.
SK하이닉스는 10일 미국주식예탁증서(ADR) 기업공개 공모가를 149달러로 최종 확정했다고 밝혔다. 공모 물량은 ADR 1억7천790만주이며, ADR 1주는 한국 보통주 10분의 1주에 해당한다. 이를 기준으로 보면 전날 SK하이닉스 보통주 종가 218만6천원, 달러 환산 약 1천445달러와 비교해 약 2.9% 높은 가격에서 공모가가 형성됐다. 이번 공모를 통해 조달하는 자금은 총 265억700만달러, 우리 돈 약 40조원 규모다.
이번 흥행은 인공지능 반도체 수요 확대와 고대역폭메모리(HBM, 대용량 데이터를 빠르게 처리하는 고성능 메모리) 시장에서 SK하이닉스의 경쟁력이 글로벌 투자자들에게 강하게 받아들여졌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수요예측 단계에서 주문 규모는 공모 물량의 7배를 넘는 2천억달러, 약 301조원에 달했다. 파이낸셜타임스와 블룸버그 보도를 보면 약 500개 투자기관이 참여했고, 글로벌 장기 투자펀드와 기술 전문 펀드, 국부펀드, 아시아 전문 투자자 등 대형 기관의 수요가 몰린 것으로 전해졌다. 상위 10개 계좌가 전체 물량의 절반가량을, 상위 25개 계좌가 약 3분의 2를 가져간 것으로 알려져 대형 기관 중심의 배정이 이뤄졌다는 점도 확인된다.
이번 상장은 단순한 자금 조달을 넘어 SK하이닉스가 미국 투자자 기반을 본격적으로 넓히는 계기라는 의미도 있다. SK하이닉스는 미 동부시간 10일 나스닥에서 종목 코드 ‘SKHYV’로 조건부 거래를 시작하고, 13일부터는 ‘SKHY’로 정규 거래에 들어간다. 공모 절차는 14일 마무리될 예정이다. 같은 날 뉴욕 타임스스퀘어 나스닥 마켓사이트에서는 최태원 회장과 곽노정 최고경영자 등이 참석해 개장 벨을 울릴 예정이다. 공모 주관사는 뱅크오브아메리카증권, 씨티그룹, 골드만삭스, 제이피모건이 맡았다.
시장에서는 추가 상장 가능성에도 주목하고 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에 제출한 예탁증서 관련 서류를 보면 등록한 ADR 물량은 17억8천만주로, 이번 공모 물량의 약 10배에 이른다. 이는 발행주식의 25% 수준 물량을 예탁기관인 씨티은행에 맡기고 필요할 때 ADR로 전환할 수 있는 한도를 미리 설정해둔 것으로 풀이된다. 또 투자설명서에는 공모 완료 뒤 유통시장에서 ADR을 보통주로 전환해 매수하는 투자자를 위해 한국 금융위원회에 별도의 한국어 증권신고서를 제출했다고 적시했다. 보통주와 ADR 사이의 전환 체계를 미리 정비해 미국과 한국 시장을 연결하려는 조치로 볼 수 있다. 이 같은 흐름은 SK하이닉스가 앞으로도 글로벌 자금 조달 창구를 넓히고, 한국 반도체 기업에 대한 해외 투자 접근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