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증시는 20일 반도체 업종에 대한 투자 심리 약화와 중동 정세 불안이 한꺼번에 겹치면서 큰 폭으로 밀렸고, 코스피는 4% 넘게 떨어진 6,516.27로 장을 마쳤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코스피는 전 거래일보다 304.33포인트(4.46%) 하락했다. 지수는 6,643.58로 출발한 뒤 장중 한때 6,814.86까지 낙폭을 줄였지만, 이후 매도세가 다시 강해지면서 6,472.80까지 밀리기도 했다. 급격한 하락세가 이어지자 오전 11시 21분 26초 유가증권시장에서 매도 사이드카가 발동됐다. 사이드카는 선물시장 급변에 따라 현물시장 프로그램 매매를 일시 제한하는 장치로, 과도한 쏠림을 진정시키기 위한 안전판이다. 올해 유가증권시장에서 사이드카가 발동된 것은 이번이 38번째이며, 이 가운데 매도 사이드카는 20번이다.
이날 약세의 중심에는 반도체 업종이 있었다. 최근 시장에서는 반도체 경기가 정점을 지난 것 아니냐는 이른바 피크 아웃 우려가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중국 인공지능 스타트업 문샷에이아이가 무료 공개한 최신 모델 ‘키미 K3’의 성능이 주목받으면서, 그동안 대규모 투자를 이어온 대형 정보기술 기업들의 자본 지출이 과도했던 것 아니냐는 의문도 커졌다. 일본 메모리 업체 키옥시아가 미국에서 특허권 침해 소송 패소로 2억2,900만달러, 약 3,400억원의 배상 명령을 받은 점도 투자 심리를 더 위축시켰다. 이런 영향으로 코스피 시가총액 비중이 절반을 넘는 삼성전자와 에스케이하이닉스가 각각 4.31%, 4.23% 내리면서 지수 전체를 끌어내렸다. 두 종목이 코스피에서 차지하는 시가총액 비중은 종가 기준 50.33%다.
수급을 보면 기관의 대규모 매도가 하락 압력을 키웠다. 유가증권시장에서 외국인과 개인은 각각 5,235억원, 3,510억원을 순매수했지만 기관은 9,217억원을 순매도했다. 외국인은 코스피200 선물시장에서도 3,510억원 순매수를 보였다. 다만 시장은 방향성을 쉽게 잡지 못했다. 대신증권 이경민 연구원은 국내 증시가 휴장 기간 쌓인 대외 악재를 한꺼번에 반영하며 약세로 출발했다고 진단했다. 동시에 메모리 시장의 수요와 공급자 우위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시각도 남아 있어, 저가 매수와 차익 실현 매물이 뒤섞이며 변동성이 커졌다고 설명했다. 원/달러 환율은 오후 3시 30분 기준 1,478.4원으로 전장보다 0.1원 내렸다.
대외 변수도 시장 불안을 키웠다. 미국과 이란의 군사적 충돌이 격화하는 가운데 지난주 미군 3명이 사망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전면전 우려가 커졌고, 국제 유가 상승은 다시 물가 부담을 자극했다. 업종별로는 부동산(0.84%)만 올랐고 보험(-8.98%), 기계·장비(-7.22%), 유통(-6.27%) 등 대부분 업종이 하락했다. 코스피 시가총액 상위 30개 종목 가운데 상승 종목은 없었으며, 현대차는 6.12% 떨어진 39만9,000원으로 40만원 선 아래로 내려왔다. 유가증권시장에서 오른 종목은 97개, 내린 종목은 799개였다.
코스닥도 충격을 피하지 못했다. 코스닥지수는 42.20포인트(5.33%) 내린 749.64로 마감했고, 장중 747.00까지 떨어지며 최근 1년 사이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오전 10시 52분 54초에는 코스닥시장에서도 매도 사이드카가 발동됐다. 올해 코스닥시장에서 사이드카가 나온 것은 모두 23번이며, 이 중 매도 사이드카는 10번이다. 에코프로비엠, 에코프로, 주성엔지니어링 등 주요 종목이 큰 폭으로 내렸고, 삼천당제약만 미국 식품의약국(FDA)과 먹는 세마글루타이드 제네릭 개발 관련 사전 협의 답변서를 받았다는 소식에 29.82% 급등했다. 이날 거래대금은 유가증권시장 29조6,490억원, 코스닥시장 4조8,060억원으로 집계됐고, 대체거래소 넥스트레이드의 프리마켓과 메인마켓 거래대금은 총 13조1,349억원이었다. 이 같은 흐름은 당분간 반도체 업황에 대한 해석과 중동발 지정학 위험, 국제 유가 움직임이 어떻게 전개되느냐에 따라 국내 증시의 변동성이 계속 커질 가능성을 시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