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사이버 보안 지형을 뒤흔든 핵심 위협 중 하나는 더욱 지능화된 봇넷이었다. 포스카우트 테크놀로지의 분석에 따르면, 올해 기록된 전체 악성 코드 중 무려 29%가 봇넷을 통해 감지되며 사이버 위협의 최전선으로 복귀했다. 과거에는 단순 반복적 악성 프로그램의 집합으로 여겨졌던 봇넷이,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정밀성과 은밀성을 겸비한 사이버 공격 도구로 진화하면서 보안 업계 전반에 비상이 걸렸다.
AI 기술이 검색 엔진부터 냉장고에 이르기까지 일상 속으로 확산되는 가운데, 범죄자들 역시 같은 기술을 무기화하고 있다. 최신 봇넷은 단순 명령 실행에서 벗어나, 트래픽 패턴을 실시간 분석하고 보안 시스템의 반응에 따라 전략을 바꾸기도 한다. 기업 네트워크에는 랜섬웨어를, 헬스케어 시스템에는 개인정보 탈취를, IoT 기기에는 암호화폐 채굴 기능을 자동 배치하는 등 맞춤형 공격 수행이 가능하다.
봇넷의 진화는 단순한 기술 변화만이 아니다. 첨단 머신러닝 모델이 탑재된 이들은 더 이상 수백만 대의 감염 장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수천 개의 노드만으로도 고도화된 표적 공격을 감행할 수 있어, 기존 방식의 탐지 및 차단이 사실상 무력화된다. 관측 가능한 비정상 트래픽은 대폭 줄어드는 대신, 일반 사용자 행위를 정교하게 흉내 내며 침투한다. 자연어 처리 기반의 피싱 이메일 작성, 시각 인식 기술을 활용한 CAPTCHA 우회 등으로 피해 발생 전까지 알아채기조차 어렵게 만든다.
문제를 더욱 심화시키는 건 이 기술의 민주화 현상이다. 과거 대형 해커 집단 중심으로 이뤄졌던 공격은, 이제 다크웹에 배포된 ‘봇넷 서비스형 프로그램’을 통해 누구든 손쉽게 실행할 수 있다. AI 봇넷 키트에는 사전 설정된 악성 행위, 탐지 회피 기능, 감염 확산 분석용 대시보드까지 제공돼, 고급 기술을 갖추지 않은 공격자도 대규모 피해를 유발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게 된다. 특히 소프트웨어 공급망을 감염 경로로 삼는 방식은 수천 기업을 한 번에 노릴 수 있어 잠재 재앙 수준의 위협이 되고 있다.
가정용 IoT 기기 역시 취약점을 노린 주요 공격 대상이다. 보안이 느슨한 스마트 온도조절기나 아기 모니터와 같은 기기는 24시간 온라인 상태를 유지하면서도 방어 체계는 부실해 봇넷 입장에선 최적의 감염 플랫폼이다. 일부 악성 봇은 기기가 정상 작동하는 것처럼 행동하는 스푸핑 기술까지 장착해, 단말기 실행 로그를 정교하게 조작하며 탐지를 회피한다. 단지 CPU 사용량이나 이상 송출 트래픽을 감지하는 기존 기법만으로는 발견이 어렵다.
이러한 복합적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방어 측 전략도 진화 중이다. AI 기반 패턴 분석, 제로트러스트 아키텍처, 비정상 행위 탐지 솔루션 등이 속속 도입되고 있지만, 공격자의 역량 향상 속도에 방어가 뒤처지고 있다는 우려는 여전하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기업 중 고도화된 봇넷 공격에 완전히 대비하고 있다고 자평한 곳은 전체의 20%에 불과했으며, 50% 이상은 사이버 위협의 빈도와 정밀성이 동시에 증가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규제 측면에서도 세계 각국 정부는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유엔은 AI를 활용한 사이버 공격의 법적 경계를 명확히 정의하는 새로운 규범 마련에 나섰다. 특히 AI 모델이 CAPTCHA 우회나 제로데이 취약점 탐지에 악용될 경우 개발자 책임 여부를 둘러싼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아직은 회색지대에 머물지만, 향후 일상적 AI 도구와 사이버 무기의 경계가 모호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디지털 전쟁의 양상이 기술력보단 의도로 좌우되는 비대칭 전쟁 국면으로 전환되고 있다는 점이 시장 전체에 주는 경고는 분명하다. 일부 자본과 도구만 있다면, 미 정부조차 수년 전까지 사용하지 않던 수준의 스마트 봇넷을 누구나 배포할 수 있는 시대다. 이제는 시스템을 단순히 보호하는 차원을 넘어, 진화하는 위협에 선제적으로 적응할 수 있는 대응 체계가 절실한 시점이다. AI가 투입된 봇넷은 더 이상 느리지도, 어설프지도, 탐지하기 쉽지도 않다. 새로운 시대의 사이버 전장은 본격적으로 개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