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그룹 회장이 SK하이닉스의 미국 증시 상장을 계기로 반도체를 넘어 인공지능 분야에 수백억달러 규모의 대형 투자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인공지능 수요가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커지면서 메모리 반도체와 관련 인프라, 기술 기업 전반에 장기 성장 기회가 열렸다는 판단을 공개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최 회장은 10일(현지시간) SK하이닉스의 미국 나스닥 상장 당일 미국 CNBC 인터뷰에서 인공지능, 인공지능 데이터센터, 관련 기술과 스타트업을 중심으로 메모리 칩 사업보다 더 큰 투자 기회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파트너와의 합작 투자 등 여러 방식을 검토하고 있다며, 머지않아 이 분야에서 SK의 매우 큰 투자가 이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투자 규모는 수백억달러로 제시했다. 이는 SK그룹이 단순히 반도체 공급 기업에 머무르지 않고, 인공지능 생태계 전반으로 사업 축을 넓히려는 전략으로 읽힌다.
최 회장은 특히 고대역폭메모리(HBM·인공지능 연산에 필요한 데이터를 빠르게 처리하는 고성능 메모리)를 둘러싼 고점 논란에 선을 그었다. 일부 빅테크 기업이 비싼 HBM 사용을 줄이기 위해 제품 구조를 바꿀 수 있다는 지적에도, 전체 수요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올해와 내년 생산능력을 두 배로 늘릴 예정이지만 고객들은 HBM뿐 아니라 기존 D램 물량까지 더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의 추격 가능성에 대해서도, 인공지능 서비스 확산으로 더 많은 토큰(인공지능이 문장과 이미지 등을 생성할 때 처리하는 데이터 단위)이 필요해지고 있어 수요 확대가 경쟁 변수까지 흡수할 수 있다는 취지로 답했다.
반도체 경기의 전통적인 순환과 지금의 인공지능 수요는 본질이 다르다는 점도 강조했다. 과거 반도체 시장은 스마트폰이나 PC 같은 기기 판매량에 따라 수요가 움직이는 경향이 강했지만, 인공지능 시대에는 모델 학습과 추론에 막대한 메모리 칩이 필요해 수요 구조 자체가 달라졌다는 것이다. 최 회장은 향후 5년 안에 생산능력을 두 배로 늘리겠다고 밝혔는데도 고객들은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말하고 있다고 전했다. 장기 공급계약과 관련해서는 3∼5년 계약의 가격 상한 유지 여부를 일률적으로 정하지 않고, 고객마다 가격 고정이나 시장 연동 등 원하는 조건이 다른 만큼 맞춤형으로 설계하겠다고 설명했다.
미국 내 투자 확대 가능성도 열어뒀다. 최 회장은 현재 인디애나주 패키징 공장에 40억달러를 투자하는 계획 외에 추가 반도체 공장 투자를 검토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내부적으로 살펴보고 있다고 답했다. 당장 확정된 계획은 없지만 적절한 입지를 찾으면 미국 내 추가 투자도 가능하다는 뜻이다. 중국 공장 운영과 관련해서는 생산량의 70%가 중국 밖으로 출하되고 대부분 미국 고객에게 전달된다며, 미국의 수출통제 정책을 준수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이번 미국 증시 상장으로 글로벌 자본시장 접근성이 높아지고, 스톡옵션 제도 등을 활용해 세계 인재를 더 쉽게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새로운 해외 주주 유입이 지배구조 개선의 동력도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 같은 흐름은 앞으로 SK하이닉스가 메모리 공급 확대에 그치지 않고, 미국 시장과 인공지능 산업을 축으로 투자와 사업 재편을 함께 밀어붙이는 방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