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해남군에서 추진 중인 15조 원 규모의 인공지능 슈퍼 클러스터 허브 구축 사업이 핵심 투자사의 자금 조달 지연으로 본계약 체결에 실패하면서, 사업 일정 전체가 지연될 가능성이 커졌다.
전남도에 따르면 이번 사업의 전략적 투자 파트너인 미국계 투자사 퍼힐스(FIR HILLS)는 당초 2025년 8월 말까지 본계약을 체결하기로 했지만, 약속했던 수준의 초기 투자금을 확보하지 못해 본계약이 무산됐다. 퍼힐스 측은 그동안 확보한 약 10억 달러(한화 약 1조 원) 규모의 자금을 바탕으로 우선 일부 데이터센터 건설을 추진하려 했으나, 전체 계획 대비 자금 부족을 이유로 계약 체결 시점 연장을 요청했다.
전남도는 퍼힐스의 요청을 받아들여 본계약 체결 시한을 6개월 연기하기로 했다. 본계약 연기 여부는 양측 협의에 따라 연장되었지만, 최종 계약 체결이 가능할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퍼힐스가 제시한 초기 투자안은 3GW(기가와트) 규모의 AI 데이터 컴퓨팅 센터와 대규모 에너지저장장치(ESS) 구축 계획 중 우선적으로 100MW 이상 규모의 데이터센터 건립이다.
슈퍼 클러스터 조성 사업은 해남 산이면 구성지구 일대 약 120만 평 부지에 인공지능 기반의 컴퓨팅 원천 인프라를 구축하는 대규모 프로젝트다. 사업은 2028년까지 7조 원, 2030년까지 총 15조 원을 투입할 계획으로, 데이터센터와 ESS뿐 아니라 글로벌 기업 유치, 재생에너지 기반 전력 공급도 포함하고 있다. 이를 위해 지난해 2월 전남도와 퍼힐스, 서남해안기업도시개발, 해남군 등 4개 주체는 양해각서를 체결한 바 있다.
이 사업의 핵심은 대규모의 컴퓨팅 자원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엔드 유저(최종 사용자)'를 얼마나 확보하느냐에 달려 있다. 전남도 역시 이러한 점을 인식하고 퍼힐스 측의 요청에 유연하게 대응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대규모 데이터센터는 일반 부동산 개발과는 달리 전력 인프라, 네트워크 속도, 지역적 안정성 등 복합적인 조건을 갖춰야 하기 때문에 실제 착공까지는 넘어야 할 과제가 많다.
전남도는 현재 퍼힐스 측이 추가 투자자 유치에 나서고 있으며, 최근의 재생에너지 특화 산업단지 정책, RE100(재생에너지 100% 사용) 제도 도입 등 국내 정책 변화가 사업 성사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러나 중동 일부 국가들이 대규모 데이터센터를 유치하기 위해 관련 부지를 저렴하게 제공하는 등 글로벌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어, 투자 유치 여건은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이 같은 흐름은 향후 전남도의 인공지능 산업기반 구축 전략과 국내외 투자환경 변화에 따라 좌우될 가능성이 크다. 본계약이 순조롭게 성사될 경우, 전남은 국내외 AI 산업 지형에서 새롭게 주목받는 거점으로 부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장기적인 계획 변경이 불가피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