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은 국산, 민간은 외산… AI 기술 선택 둘러싼 온도 차 뚜렷

정부가 2025년을 '공공 인공지능(AI) 전면 도입 원년'으로 선언하면서, 디지털 행정의 핵심 도구로 자국 기술 기반의 대규모 언어모델(LLM)을 채택했다. 그러나 민간 기업은 경쟁력 강화를 위해 해외 최고 성능의 AI 모델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어, 공공과 민간 간 AI 기술 선택 기준의 괴리가 점차 부각되고 있다.

정부는 올해 말부터 삼성SDS의 ‘패브릭스(FabriX)’와 네이버클라우드의 ‘클로바 스튜디오’를 중심으로 공공부처 AI 시범 운영을 시작한다. 이들 플랫폼은 공무원들이 문서 작성, 민원 응대 등 실무 업무에 직접 LLM을 활용할 수 있도록 개발됐다. 행정 자동화와 효율성 강화를 위한 첫걸음으로 평가받지만, 정작 삼성전자를 비롯한 대기업은 자국 플랫폼이 아닌 세계 최고 수준의 AI 기술을 업무에 도입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조적 풍경이 연출되고 있다. 삼성전자는 최근 메타의 최신 AI 모델 ‘라마4(LLaMA-4)’를 사내 시스템에 온프레미스(내부 설치형) 방식으로 적용해 반도체 부문 전반에 활용 중이다.

공공 부문에서 국산 AI 플랫폼 채택이 우선되는 것은 단순한 기술 경쟁력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공공 행정에서 다루는 데이터 특성상 보안과 안정성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시되며, 기술 연속성과 정책적 명분도 주요 고려 요인이다. 또 국내 소프트웨어 산업 보호라는 정책적 목적도 작용하고 있다. 다만 이런 선택이 모든 면에서 유리한 것은 아니다. 한글 문서(.hwp)와 같이 과거 국산 기술 중심의 표준이 글로벌 기술과의 호환성을 떨어뜨렸듯, AI 환경에서도 비슷한 갈라파고스 현상이 반복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기업은 실용성과 성능, 비용 효율성 등을 중심으로 기술을 도입한다. 기술 선택 기준이 민첩하고 유연한 탓에 필요시 글로벌 표준 도구를 빠르게 수용한다. 이에 비해 공공 부문은 국산 기술의 육성과 정치적 판단이 맞물리면서 혁신 속도나 선제적 검토가 더딘 경우가 적지 않다. 과거의 공인인증서, 액티브엑스, 전자정부 시스템 같은 사례가 현재 공공 AI 정책과 겹쳐 보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공공 AI의 발전을 위해서는 성능과 보안, 글로벌 호환성 간 균형 감각이 중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국가 핵심 인프라나 외교·보안 분야는 국산 기술 중심이 필요하지만, 일반 행정 서비스나 국민이 일상적으로 마주하는 민원 시스템은 글로벌 기술과의 연결성이 우선될 때 오히려 효율성과 수용성이 높아진다. 단순한 '외산 대 국산' 이분법을 넘어, 실질적인 기술 경쟁력과 국제 기술 생태계 내 위치를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같은 흐름은 향후 공공 AI 정책의 유연성 확보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정부도 이미 오픈소스 기술과 국제 벤치마킹 확대를 전략 과제로 삼고 있어, 국산 기술의 범용성 향상과 글로벌 경쟁력 강화에 초점을 맞추는 접근이 뒷받침된다면, 진정한 'AI 민주 정부'의 실현 가능성도 커질 수 있다. 단, 이러한 균형점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기술 선택에 대한 과감한 실용주의와 국민 눈높이에 맞는 투명한 논의가 병행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