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확산이 빨라질수록 초기 투자자들의 시선은 ‘성장’보다 ‘보안’으로 향하고 있다. 최근 시드 투자 흐름을 보면, 시장은 AI의 잠재력만큼이나 사이버보안 리스크를 심각하게 보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크런치베이스 데이터에 따르면 올해 AI와 보안의 교차 영역에 있는 스타트업들은 150건이 넘는 시드 라운드를 통해 총 8억5500만달러를 유치했다. 원화로는 약 1조2484억원 규모다. 현 추세가 이어지면 이 분야 시드 투자는 사상 최대치를 경신할 가능성이 크다.
이 같은 흐름은 최근 실제 사건과도 맞물린다. 지난주에는 오픈AI(OpenAI) 에이전트가 오픈소스 AI 플랫폼 허깅페이스(Hugging Face)를 해킹했다는 소식이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이른바 ‘통제되지 않은 AI 에이전트’ 위험이 더 이상 가정이 아니라 현실 문제로 떠오른 셈이다.
5억~10억원이 아닌 500만~1000만달러 구간에 집중된 자금
이번 분석에서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은 500만~1000만달러 규모의 중형 시드 라운드다. 이는 원화 기준 약 72억9800만원에서 145억9600만원 수준이다. 대형 AI 투자에 가려 주목받지 못했던 구간이지만, 사이버보안 분야에서는 유독 자금 유입이 두드러졌다는 평가다.
크런치베이스는 이 구간에서 AI ‘환각’ 탐지, 공격 시뮬레이션, 금융권 에이전트 검증 같은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스타트업들이 다수 자금을 끌어모았다고 분석했다. 단순한 방어 소프트웨어를 넘어, AI가 스스로 일으킬 수 있는 오류와 공격 가능성까지 겨냥한 점이 특징이다.
이는 투자자들이 AI 보안을 하나의 좁은 틈새 시장이 아니라, 향후 AI 산업 전반을 떠받칠 필수 인프라로 보고 있음을 보여준다. AI 활용이 늘수록 보안 수요도 함께 커질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대형 시드 라운드도 속출… 인물과 초기 성과가 투자 끌어올려
초기 단계치고 이례적으로 큰 투자도 적지 않았다. 대표적으로 AI 시대용 신원 인텔리전스 기술을 개발하는 오크(Oak)는 이달 6000만달러, 약 875억7600만원 규모의 시드 투자를 유치했다.
실리콘밸리 기반 스타트업 실레이크(Cylake)는 퍼블릭 클라우드에 의존하지 않는 AI 네이티브 사이버보안 플랫폼을 내세워 지난 3월 4500만달러, 약 656억8200만원을 조달했다. 기업용 AI 거버넌스·보안 플랫폼을 만드는 제트스트림 시큐리티(JetStream Security)도 3400만달러, 약 496억2640만원 규모 시드 라운드로 출범했다. 회사 측은 당시 수요가 공급을 크게 웃도는 ‘초과 청약’ 상태였다고 설명했다.
시드 단계에서 이렇게 큰 금액이 들어갈 때는 대체로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창업자나 핵심 팀의 이력이 워낙 강력해 ‘사람’과 ‘미션’에 먼저 돈이 몰리거나, 아주 초기부터 시장 반응과 제품 성과가 뚜렷하게 확인됐을 때다.
이번에는 특히 전자에 해당하는 사례가 많다. 실레이크의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는 팔로알토네트웍스(Palo Alto Networks) 창업자인 니르 주크(Nir Zuk)다. 제트스트림 시큐리티 역시 크라우드스트라이크, 센티넬원 등 주요 보안 기업 출신 인력들을 끌어모으며 주목받았다.
보안 투자 전반도 견조… AI 확산의 ‘그늘’이 새 시장 만든다
AI 보안만 뜨거운 것은 아니다. 같은 데이터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사이버보안 분야 전체 벤처 투자액은 전 단계 합산 106억달러로 집계됐다. 원화로는 약 15조4717억원이다. 최근 몇 년과 비교해도 대체로 비슷한 수준으로, 보안 투자 전반이 안정적인 흐름을 유지하고 있다는 의미다.
다만 시장의 기대감은 초기 단계에 더 강하게 몰리는 분위기다. 최근 수개 분기 동안 AI 인프라와 애플리케이션 구축에 수천억달러가 투입된 만큼, 그에 따라 생길 수 있는 현실적·잠재적 보안 위협을 막는 기술 역시 빠르게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결국 이번 시드 투자 흐름은 투자자들이 AI의 ‘성장 서사’뿐 아니라 ‘통제 비용’까지 함께 보기 시작했다는 신호에 가깝다. AI 보안은 일시적 유행이 아니라, AI 산업이 커질수록 함께 확대될 핵심 시장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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