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8월, 해커들이 노마드 브리지에서 약 1억 9,000만 달러(약 2,641억 원)를 탈취한 사상 네 번째 규모의 암호화폐 해킹 사건이 발생했다. 이때 일부 윤리적 해커(화이트햇)는 범죄자가 훔쳐간 암호화폐를 일시적으로 압수해 피해 확산을 막으려 했지만, 법적인 불확실성 탓에 많은 이들이 개입을 주저했다. 이 사건은 흰모자 해커들에게 법적 보호를 제공하자는 문제의식을 불러왔고, 결국 암호화폐 보안 단체 SEAL(Security Alliance)이 세이프 하버 협약(Safe Harbor Agreement)을 탄생시키는 계기가 됐다.
세이프 하버 협약은 2024년 공개됐다. 이는 화이트햇 해커와 프로젝트 개발자들이 사이버 공격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합법적인 방식으로 대응할 수 있는 명확한 지침을 제공하는 프레임워크다. SEAL의 공동 리더인 딕슨 우(Dickson Wu)와 로버트 맥와(Robert MacWha)는 “숙련된 화이트햇 해커들이 간혹 공격을 막을 기회가 있어도, 그 과정에서 프로토콜을 해킹하는 것이 불법이 될까 두려워 행동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며 “세이프 하버는 이 불안을 제거하고, 법적으로 안전한 대응 절차를 마련한다”고 설명했다.
이후 불과 2년이 채 지나지 않아, SEAL은 이 협약을 채택한 29개 암호화폐 기업을 ‘세이프 하버 챔피언스 2025(Safe Harbor Champions 2025)’로 선정해 공식 발표했다. 협약 채택에 참여한 주요 기업은 폴리마켓(Polymarket), 유니스왑(Uniswap), a16z 크립토, 패러다임(Paradigm), 파이퍼 알더먼(Piper Alderman), 그리고 코인텔레그래프까지 다양하다.
이번 발표는 단순한 수상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우와 맥와는 “세이프 하버 같은 기준에 업계가 힘을 모으는 일은, 마치 조율된 보안 전략을 펼치는 것과 같다”며 “수조 원 규모의 자산과 수백 개의 공격 벡터가 존재하는 만큼, 명확한 보안 기준을 설정하고 참여 기업을 보상하는 시스템이야말로 전체 생태계 보안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점점 지능화되는 해킹 시도에 맞서기 위해서는 관련 커뮤니티와 프로젝트, 그리고 윤리적 해커 간의 협력이 필수다. 법적 장벽을 완화하고 실질적인 대응 여지를 넓혀주는 세이프 하버 협약은, 암호화폐 보안의 새로운 이정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