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미국의 소매 판매가 예상보다 큰 폭으로 감소하면서, 관세 인상 전에 펼쳐졌던 소비자들의 '사재기 행렬'이 사실상 끝났다는 신호가 시장에 전달됐다. 미국 상무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5월 소매 판매는 전월 대비 0.9% 줄어들며 총 7,154억 달러(약 1,030조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이는 월가 예상치였던 0.6% 감소를 크게 웃돈 수치다.
주요 하락 요인은 자동차 판매 부진이다. 5월 한 달 동안 자동차와 부품 판매는 3.5% 축소됐는데, 이는 소비자들이 자동차와 금속류에 대한 관세 부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3월 중 대거 구매에 나섰던 후폭풍으로 분석된다. 당시 차량 가격 인상 우려 속에 구매 수요가 단기적으로 폭증한 반면, 이후에는 수요가 급격히 식으며 딜러들의 재고가 눈에 띄게 쌓이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웰스파고의 팀 퀸런과 섀넌 그라인 이코노미스트는 "연초 이후 다섯 달 중 네 달간 자동차 판매가 줄면서 업계 전반에 걸쳐 부진이 확대되고 있다"며 재고 조정이 본격화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무디스 애널리틱스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스콧 호이트 역시 “이번 하락은 소비 심리 위축보다, 관세 충격에 대비한 선구매 수요가 다 소진됐다는 점에서 기인한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흐름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대외 무역 정책이 소비자 지출 패턴에도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시사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전부터 금속, 자동차 등 전략 산업군에 대한 수입 관세 강화를 강조해 왔으며, 그 파장이 점차 광범위한 소비 항목으로 확산되고 있다.
다만 전체 소매 판매가 일제히 이후 진입 국면에 들어선 것은 아니다. 5월에는 꽃집, 문구점, 스포츠용품점 등 다목적 소매점군에서 매출이 눈에 띄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 같은 국지적 호조가 전반적인 소비 둔화를 상쇄하긴 어려운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관세 이슈가 지속될 경우 소비의 양극화가 심화될 가능성을 경고하고 있다. 호이트 이코노미스트는 “소비자가 가격 상승을 우려해 앞당겨 구매한 것들이 향후 몇 달 간의 수요를 선행 소진시켰다”며 “관세가 실제로 인상되지 않더라도, 이미 소비 리듬은 단절됐다”고 지적했다.
리테일 업계는 이제 이른 '수요 고점'의 후유증을 관리할 시점에 들어섰다. 트럼프 대통령의 무역 정책이 물가 뿐 아니라 소비자 심리에 장기적 흔적을 남기고 있는 가운데, 기업들은 추가적인 정책 변화에 대비한 전략 수립이 요구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