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트럼프 라운드'로 WTO 대체 선언…새 무역 질서 본격화

미국 정부가 기존 세계무역기구(WTO) 중심의 세계 무역 질서를 실질적으로 대체하려는 움직임을 공식화했다.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무역대표는 최근 미국 주도의 새 무역 협상 방식을 ‘트럼프 라운드’로 규정하며, 이 새로운 전략이 세계 경제 질서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어 대표는 8월 7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미국의 무역 정책 변화가 다자주의에 뿌리를 둔 기존 체제에 근본적인 도전을 가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그는 브레턴우즈 체제(1944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도입된 국제 통화 및 무역 질서)와 우루과이라운드(WTO 설립으로 이어진 다자 무역 협상)를 언급하며, 이 체제들이 시간이 지나며 미국의 국익과 어긋났다는 평가를 내놓았다. 이를 반영하듯 그는 “우리는 이제 트럼프 라운드를 목도하고 있다”고 표현하며, 이는 미국이 주도하는 새로운 무역 규범 수립 과정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그리어 대표는 지난 4월 2일 미국 정부가 상호관세(상대국의 관세 수준에 맞춰 자국의 관세를 조정하는 조치)를 발표한 이래 진행된 연쇄적인 무역 협상들이 단순한 양자 합의를 넘어 새로운 국제적 틀을 형성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특히 유럽연합(EU)과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7월 스코틀랜드 턴베리에서 체결한 무역 합의가 전환점이 되었다고 강조했다. 당시 합의는 "공정하고 균형 있는 무역 원칙에 바탕을 두었으며, 기존 다자기구의 선언적 합의와는 구별되는 실질적인 전환점"이라며, 트럼프식 무역 정책의 방향성을 구체화했다고 평가했다.

또한 그는 새로운 무역 질서가 단기간 내에 큰 진전을 이루었다고 강조했다. 미국은 ‘세계 최대 소비시장’이라는 매력을 ‘당근’으로, 동시에 관세 인상이라는 ‘채찍’을 활용한 전략 덕에 과거 수년간 진행된 WTO 협상을 통해서보다 더 많은 해외 시장 접근권을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한국, 일본, 베트남 등 아시아 주요국과의 무역 합의 사례를 언급하며, 미국이 주도하는 새로운 무역 프레임워크에 전 세계가 응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의 경우, 그리어 대표는 한국이 미국 관세 15%를 수용하고 미국 자동차 기준을 받아들이는 한편, 3천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제조업 투자를 약속했다고 소개했다. 아울러 그는 이 투자가 쇠퇴한 미국 조선 산업의 재활성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는 기존 WTO 중심의 자유무역 규범보다 훨씬 양자 간 국익 중심의 정책 접근이라는 점에서 기존 무역 정책 틀과는 차별화되는 흐름이다.

무역 분쟁 해결 방식에서도 기존과의 차이가 두드러진다. 그리어 대표는 WTO의 복잡하고 장기화되는 분쟁 조정 절차 대신, 미국은 양자 합의 내용을 실시간으로 감시하고, 협정 불이행 시 즉각적으로 고율의 관세를 재부과할 수 있다는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이는 무역 파트너들에게 실질적인 압력 수단을 확보하겠다는 의미다.

이 같은 변화는 결국 미국 중심의 새로운 무역 질서가 실질적으로 현실화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향후 미국의 무역 전략이 추가적으로 확산될 경우, 기존 WTO 체제는 유명무실해지고 각국의 대미 통상 전략에도 큰 조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에 따른 글로벌 무역 구조의 불확실성과 갈등 심화에 대한 우려도 커질 가능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