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재정 적자 확대와 이에 따른 중앙은행의 독립성 훼손 가능성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재닛 옐런 전 재무장관은 미국 정부의 재정 상태가 점점 악화하면서, 중앙은행이 정책 목표를 놓치고 정부의 자금 조달을 우선시하게 되는 위험, 이른바 ‘재정우위’ 상황에 대한 우려를 공식 석상에서 제기했다.
옐런 전 장관은 1월 4일(현지시간)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전미경제학회 연차총회에 참석해, 미국 정부의 공공부채가 누적되는 가운데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가 기준금리를 낮추거나 국채를 대규모로 매입하는 방식으로 재정 부담을 덜어줄 압력을 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는 통화정책이 물가안정이나 고용 극대화라는 본연의 목표보다 정부의 채무 상환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왜곡될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재정우위(Fiscal dominance)란 말 그대로 재정정책이 통화정책의 우선 순위를 차지하는 현상을 뜻한다. 이 경우 연준은 인플레이션 억제나 노동시장 안정 같은 고유한 정책 목표 대신, 정부의 재정 건전성을 유지하는 데 힘을 보태야 하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연준에 금리 인하를 요구했다는 발언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왔다. 옐런 전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통화정책에 정치적 압력을 행사한 점을 예로 들며,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그럼에도 현재의 미국 경제는 본격적인 재정우위 상황에 도달하지는 않았다는 게 옐런 전 장관의 판단이다. 그는 연준이 여전히 물가안정과 고용 극대화라는 법적 책임을 고수하고 있다고 평가하면서, 연준이 정부의 요구에 지나치게 끌려다니고 있지는 않다고 강조했다. 다만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막대한 적자가 지속될 경우 시장 신뢰가 무너지면서 달러 약세와 같은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옐런 전 장관은 또 미국의 재정 상황이 지속 가능성을 잃어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국내총생산(GDP) 대비 6% 수준에 달하는 재정적자를 적어도 3%대로 줄여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으며, 이를 위해선 중장기적인 긴축 정책이 요구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미국 정치권이 양당 간 극심한 갈등으로 초당적 예산 개혁에 미온적인 상황이라, 실질적인 재정 정책 조정은 쉽지 않은 실정이다.
향후 미국 정부가 재정 건전화에 실패하고, 동시에 정부가 연준에 기준금리 하락 또는 재정 지원을 노골적으로 요구하게 될 경우, 통화정책의 독립성과 시장 신뢰는 크게 흔들릴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구조가 장기적으로 인플레이션 기대를 불안정하게 만들고 달러화 가치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며, 조기 대응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