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빈 워시가 22일 미국 연방준비제도 새 의장으로 취임했지만, 시장은 연준이 곧바로 기준금리 인하로 방향을 틀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다. 물가 상승세가 다시 강해진 데다 고용과 자산시장도 아직 크게 꺾이지 않아, 연준이 당분간 긴축 기조를 유지하거나 오히려 추가 인상 가능성까지 열어둘 수 있다는 판단이 우세하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 경제를 보면 금리 인하를 서두르기 어려운 배경이 분명하다. 4월 생산자물가지수 상승률은 전년 동기 대비 6.0%로 2022년 이후 가장 높았고,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도 3.8%로 약 3년 만에 가장 큰 폭을 기록했다. 물가가 다시 불안해지는 와중에도 실업률은 4.3%로 비교적 안정적이고, 뉴욕증시 3대 지수는 잇따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경기가 급격히 식는 모습이 아닌 만큼, 연준으로서는 물가를 더 자극할 수 있는 금리 인하를 쉽게 선택하기 어렵다.
금융시장도 이런 시각을 반영하고 있다. 시카고상업거래소의 페드워치에 따르면 22일 기준 금리선물 시장은 올해 12월까지 연준이 기준금리를 한 차례 이상 인상할 확률을 약 70%로 반영했다. 반면 연내 금리 인하 가능성은 사실상 가격에 반영되지 않았다. 장기 인플레이션 우려를 보여주는 채권시장에서도 30년 만기 미국 국채 금리가 최근 5.1%를 넘어서며 2007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시장 참가자들은 연준이 물가를 충분히 눌렀다는 확신을 얻기 전까지는 통화 완화로 돌아서기 어렵다고 보고 있는 셈이다.
워시 의장 개인의 성향만으로 정책이 바뀌기 어렵다는 점도 중요한 변수다. 연방공개시장위원회는 의장을 포함한 연준 이사 7명과 지역 연방준비은행 총재 5명 등 모두 12명의 투표로 기준금리를 결정한다. 즉 의장이 교체됐다고 해서 방향이 자동으로 달라지는 구조가 아니다. 지난 4월 28∼29일 회의 의사록에서도 다수 위원은 물가가 목표 수준을 계속 웃돌면 금리 인상도 필요할 수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그동안 상대적으로 완화적 성향으로 분류되던 크리스토퍼 월러 연준 이사도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개 강연에서 인플레이션이 곧 진정되지 않으면 금리 인상 가능성을 더는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워시 의장은 인준 청문회에서 금리 정책과 관련해 뚜렷한 방향을 명확히 드러내지 않았고, 취임 전에는 선제안내(포워드 가이던스·향후 정책 방향을 미리 설명하는 소통 방식) 축소 같은 연준 운영 개편 필요성도 언급했다. 하지만 이 역시 다른 위원들의 지지를 얻어야 현실화할 수 있다. 제이피모건의 마이클 페롤리 이코노미스트는 뉴욕타임스에 현재 통화정책이 충분히 긴축적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연준이 올해 동결을 유지한 뒤 내년에 금리 인상에 나설 수 있다고 전망했다. 워시 의장과 함께 연준 의장 후보군으로 거론됐던 마크 서머린 전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 부국장도 월스트리트저널에 성급한 완화 기조는 장기채권 시장을 더 불안하게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결국 워시 의장의 첫 행보는 정치적 기대보다 연준의 정책 신뢰성을 얼마나 지켜내느냐에 초점이 맞춰질 가능성이 크며, 이 같은 흐름은 앞으로도 미국 물가 지표가 확실히 꺾이지 않는 한 금리 인하 기대를 계속 뒤로 미루는 방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