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는 미국과 이란의 군사 충돌이 격화하고 홍해 항로 불안까지 겹치면서 21일 다시 큰 폭으로 올랐다. 중동에서 원유 생산과 운송을 둘러싼 지정학적 위험이 한꺼번에 커지자, 실제 공급 차질이 전면화하기 전부터 시장이 선제적으로 불안 심리를 가격에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날 ICE 선물거래소에서 9월 인도분 브렌트유 선물 종가는 배럴당 91.01달러로 전장보다 2.01% 상승했다. 뉴욕상업거래소에서 8월 인도분 미국 서부텍사스산원유 선물 종가도 배럴당 84.91달러로 2.02% 올랐다. 종가 기준으로 브렌트유는 6월 10일 이후, 서부텍사스산원유는 6월 11일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국제유가가 단기간에 다시 90달러 선을 넘나들게 된 것은 시장이 중동 정세를 단순한 지역 분쟁이 아니라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 전체의 위험 요인으로 보기 시작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번 유가 상승의 직접적인 배경은 중동 곳곳에서 충돌이 동시다발적으로 확산한 데 있다. 미국의 이란 공습 이후 이란은 바레인·쿠웨이트·요르단 내 미군 시설을 보복 공격했고, 호르무즈 해협 인근에서는 유조선 피격도 이어졌다. 호르무즈 해협은 중동 산유국 원유가 세계 시장으로 나가는 핵심 통로여서, 이 일대 긴장이 높아지면 실제 수출 차질이 없더라도 원유 가격은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 예멘의 친이란 무장세력인 후티 반군이 홍해에서 사우디아라비아를 겨냥한 해상 봉쇄를 선언하면서, 아시아로 향하던 사우디산 원유 운반선 2척이 홍해에서 회항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는 단순한 위협을 넘어 물류 차질이 현실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중동 밖의 공급 불안도 시장을 자극했다. 19일에는 러시아 남부의 카스피해 송유관 컨소시엄 터미널이 우크라이나의 드론 공격을 받아 카자흐스탄산 원유 선적이 중단됐다. 원유시장은 한 지역의 문제만으로 움직이지 않고, 여러 공급 경로에서 차질 조짐이 동시에 나타날 때 가격 변동폭이 더 커지는 특징이 있다. 에너지 컨설팅업체 겔버 앤 어소시에이츠도 이번 상승이 당장 원유 생산량 감소 때문이라기보다 홍해 통항 불안과 사우디의 아시아 수출 불확실성이 시장에 반영된 결과라고 분석했다. 다시 말해 현재 시장은 실제 공급량보다 앞으로의 운송 차질 가능성을 더 크게 보고 있는 셈이다.
이 같은 흐름은 향후 중동 정세와 주요 해상 운송로의 안전이 얼마나 빨리 안정되느냐에 따라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충돌이 장기화하거나 홍해와 호르무즈 해협의 항행 불안이 더 심해지면 국제유가는 추가 상승 압력을 받을 수 있다. 반대로 군사적 긴장이 완화되고 원유 선적과 운송이 정상화된다는 신호가 확인되면 최근 급등분 일부가 되돌려질 여지도 있다. 다만 현재로서는 시장이 공급 자체보다 공급망의 불확실성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어, 당분간 유가 변동성은 큰 상태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