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벤처캐피털(VC) 산업은 실리콘밸리라는 특정 지역과 특권 계층에 깊게 뿌리내렸다. 캘리포니아 샌드힐로드의 문턱을 넘을 수 있는 사람들은 극소수였고, 이들이 세계적인 기술 스타트업의 성패를 좌우해 왔다. 하지만 암호화폐 시장의 인플루언서 투자자들이 이 폐쇄적인 권력 구조를 빠르게 허무는 중이다. 이들은 기존 VC들이 수십 년간 약속만 해왔던 투자 기회의 민주화를 실천하며 투자 지형에 균열을 내고 있다.
암호화폐 인플루언서들은 전통 금융권(TradFi)에서 단순 마케팅 인물로 취급받기도 하지만, 이들이 수행하는 역할은 훨씬 복합적이다. 실시간 분석 보고서를 SNS를 통해 공유하고, 자신의 투자 내역을 블록체인 상에 투명하게 드러내며, 팔로워들의 투자 수익과 자신들의 평판이 직결되는 구조 속에서 활동한다. 이는 민감정보 보호라는 이름 아래 비공개 NDA 뒤에 숨어 있는 전통 VC들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투자 책임성을 요구한다.
미국에서는 순자산 100만 달러(약 13억 9,000만 원) 이상, 연소득 20만 달러(약 2억 7,800만 원) 이상인 개인만이 '공인 투자자(Accredited Investor)'로서 초기 단계 투자에 참여할 수 있다. 이 규정으로 인해 전체 미국인의 2%도 안 되는 인구만이 VC 투자에 접근할 수 있으며, 실리콘밸리나 뉴욕 같은 대도시를 제외한 지역에서는 참여 기회조차 찾기 어렵다. 기존 VC 산업의 폐쇄성과 배타성은 금융 불평등의 구조적 원인으로 작용해 왔다.
반면, 암호화폐 인플루언서들은 X(옛 트위터), 디스코드, 텔레그램 등 소셜 플랫폼을 기반으로 성장하며 투자 문턱을 낮췄다. 유망한 초기 프로젝트를 발굴해 공개하고, 온체인 데이터를 기반으로 포트폴리오를 투명히 공개한다. 아울러 커뮤니티 기반 디딤돌 조사와 협업 리서치를 통해 정보의 비대칭 문제를 해소하고 있다.
탈중앙화금융(DeFi)의 개방성과 상시 검증 가능한 스마트 계약 구조는 이 같은 ‘열린 투자 환경’에 힘을 실어준다. 한 인플루언서가 프로젝트를 추천하면 수천 명의 전문가와 일반 투자자들이 동시에 토크노믹스 구조를 분석하고 리스크를 진단한다. 이들의 집단 지성은 때로는 수십 년 경력의 VC도 놓치는 잠재 리스크를 포착한다.
더불어, 인플루언서 투자자들은 단지 정보 제공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자금과 명예를 걸고 투자에 임한다. 이는 타인의 자금을 조용히 운용하면서 대중과는 일정 거리 두기를 유지하는 기존 VC들과는 뚜렷한 차별점이다. 실제로 일부 프로젝트들은 인플루언서 커뮤니티의 분석력과 자금력을 통해 초기 시장에서 자리 잡았으며, 이는 권력 분산화의 대표적인 사례로 회자되곤 한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재산과 인맥이 아닌 지식, 책임, 참여의지가 투자 접근의 기준이 되고 있다. 전통적 VC 모델이 강조해온 ‘검증된 인맥 네트워크’와 ‘고소득 투자자’ 중심의 참여 구조는 점차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으며, 투자 기회 역시 점차 퍼블릭 블록체인 기반 생태계로 옮겨가고 있다.
투자에 따르는 위험은 여전히 존재하며, 인플루언서의 조언이라 할지라도 자체 판단과 검증이 필수다. 하지만 접근성과 투명성 차원에서 봤을 때, 암호화폐 인플루언서들은 기존 VC들이 놓쳤던 수많은 기회를 일반 투자자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그들이 변화시키는 투자 생태계는 위험을 함께 나누는 구조지만, 동시에 기회도 함께 나누는 시장이라 할 수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자본이, 기존의 폐쇄된 권력 구조를 거치지 않고 직접 창업가에게 전달되고 있다. 앞으로의 금융시장은 전통 VC들이 이 새로운 흐름에 적응하느냐, 혹은 외면하고 도태되느냐의 기로에 놓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