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대한민국 금융은 '고사(枯死)' 위기다. 겉으로는 핀테크 강국을 외치지만, 실상은 낡은 규제의 둑 안에 갇혀 말라가고 있다. 전 세계가 블록체인이라는 고속도로를 깔고 달러를 실어 나르는 동안, 우리 금융 당국은 여전히 "가상자산은 위험하다"는 낡은 주문만 외우며 빗장을 걸어 잠그고 있다. 특히 전 세계적 화두인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한국의 태도는 '디지털 쇄국정책'이라 불러도 할 말이 없을 지경이다.

우리가 착각하고 있는 것이 있다. 시장과 대중은 '스테이블코인'이라는 이름표가 붙은 암호화폐 그 자체를 열망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스테이블코인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달러(Dollars)'와 '더 빠른 결제(Faster settlement)', 그리고 '24시간 멈추지 않는 송금(24/7 payments)'을 원할 뿐이다.

제3세계 국가의 국민들이 왜 스테이블코인에 열광하는가. 자국 화폐의 변동성에서 벗어나 가장 안전한 자산인 '달러'에 접근하고 싶기 때문이다. 글로벌 기업들은 왜 이 시스템을 도입하려 하는가. '더 낮은 수수료(Lower fees)'와 '신뢰할 수 있는 결제(Reliable payments)' 시스템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기존 금융 시스템이 강요하는 불합리한 '사전 자금 조달 의무(No prefunding obligations)'에서 벗어나 유동성을 확보하고, '더 저렴한 신용(Cheaper credit)'과 새로운 '투자 기회(Access to investment opportunities)'를 얻기 위함이다.

즉, 스테이블코인은 그 자체로 목적물인 '상품(Product)'이 아니라, 이 모든 금융 혁신을 가능케 하는 '조력자(Enabler)'이자 인프라다.

그런데 한국의 규제 당국은 어떠한가. 이 '조력자'를 마치 금융 질서를 어지럽히는 '범죄자' 취급하며 감시하고 억제하는 데만 골몰하고 있다. 본질은 보지 못하고 껍데기만 보고 있는 꼴이다. 대중이 원하는 것은 빠르고 싸고 안전한 금융 경험인데, 정부는 그 수단이 코인 형태라는 이유만으로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 이는 마치 사람들이 더 빨리 이동하기 위해 자동차를 원하는데, 엔진이 위험하다며 마차만 고집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사이 한국은 철저히 고립되고 있다. 글로벌 무역 결제와 송금 시장은 스테이블코인을 통해 24시간 초국경으로 연결되고 있다. 달러 기반의 스테이블코인이 전 세계로 뻗어나갈 때, 원화는 우물 안 개구리 신세다. 기업들은 낡은 외환 송금 규제에 묶여 막대한 수수료와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이것이 국가적 낭비가 아니고 무엇인가.

금융 당국은 탁상공론을 멈춰야 한다. 스테이블코인을 규제의 대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우리 국민과 기업에 '더 나은 금융 효용'을 제공할 수 있는 도구로 인식해야 한다. 소비자는 기술의 작동 원리에는 관심이 없다. 그저 내 돈이 안전하고 빠르게, 그리고 싸게 움직이길 바랄 뿐이다.

지금 한국이 스테이블코인을 방치하고 고사시키는 것은, 단순히 코인 시장 하나를 죽이는 게 아니다. 미래 금융의 혈관을 스스로 막아버리는 자해 행위다. 도구(Enabler)를 뺏으면 혁신도 없다. 전 세계가 디지털 금융으로 질주하는데 우리만 뒷짐 지고 있다가, 나중에 남의 나라 플랫폼에 비싼 통행세를 내며 종속될 것인가. 골든타임은 이미 지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