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코(Kaiko) 리서치가 발행한 최신 데이터 디브리프 리포트에 따르면, 유럽 은행 주도의 유로화 스테이블코인 개발이 가속화되며 시장 구조 재편이 본격 시작되고 있다. 특히 2024년 6월 미카(MiCA) 규제 시행 이후, EURC와 EURCV를 중심으로 거래량과 유동성이 모두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스테이블코인은 암호화폐 생태계에서 가격 안정성과 달러 중심성을 동시에 상징해왔다. 그러나 “현재 유럽은 USD 스테이블코인을 통한 달러 패권에 의존할 위험을 인식하고, 자체적인 통화 기반의 대안 마련에 나서고 있다”는 것이 보고서의 핵심 평가다. 유럽은 보수적인 규제 프레임워크를 통해 법적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자금세탁 방지 요건 등을 강화하며 보호받는 시장을 구축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유럽 주요 은행들의 참여도 뚜렷하다. 도이체 뵈르제는 암호 인프라 구축에 나섰고, 소시에테 제네랄 산하 SG-Forge는 유로화 표시 스테이블코인 EURCV를 출시해 온체인 결제 자산으로 활용 중이다. UBS는 채권과 토큰화된 펀드를 관리하며 스테이블코인 기반 생태계의 연결 고리를 확장하고 있다. 특히 EURCV는 전통 금융을 토큰화 자산과 연결할 수 있는 실사용 사례로 주목받는다.
시장 데이터도 이를 뒷받침한다. EURC와 EURCV는 2024년 중 거래량이 꾸준히 증가했으며, 출시 이후 EURCV의 유통량도 눈에 띄게 늘어났다. 단, 여전히 유동성 측면에선 제한적인 수준이며 EURCV는 주요 거래 쌍이 오직 EUR에만 국한돼 있다. 반면 EURS는 EUR보다 USD 기반 거래에서 더 높은 비중을 보이는데, 이는 고유한 제약이자 기회로 해석된다.
거래소 집계 결과, 2025년 EURC 거래량은 코인베이스에 집중돼 있었지만 후반기 들어 불리시, 크라켄, 에어로드롬 등 신규 거래소 진입으로 시장 집중도가 낮아지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허핀달-허쉬만 지수(HHI)는 2025년 초 9,000 이상에 달하다가 연말에는 5,000~6,000 수준까지 하락했다. 이는 유로화 스테이블코인을 둘러싼 경쟁 구도가 빠르게 다양해지고 있음을 암시한다.
이 모든 흐름의 중심에는 미카(MiCA) 규제가 있다. 미카는 EU 전역에서 디지털 자산 규제를 통합하고 거래소, 발행자 모두에 해당 요건을 적용해 법적 확실성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는 제도권 자본의 유입을 가능케 한다는 장점이 있지만, 동시에 시장 진입 비용 상승이나 발행자의 이탈 우려도 동반한다. 규제당국은 단기적인 시장 위축 대신 장기적 성장 기반을 조성하려는 복합적 선택을 택한 셈이다.
유럽 유로화 스테이블코인 시장은 이제 막 시작 단계다. EURC와 EURCV의 거래량은 증가하고 있으나 유동성과 거래처 다양성은 여전히 과제다. 제도화가 거의 완료된 현시점에서 유럽의 다음 과제는 지속적인 채택 확산과 생태계 깊이 확대다. 유로화 기반 암호화 생태계는 과연 달러 중심의 글로벌 암호화 질서를 흔들 수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