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 업계만큼 '내러티브(Narrative·서사)'라는 단어를 사랑하는 곳도 드물다. 기술의 실체나 사업의 본질보다, 그럴듯한 '이야기'가 가격을 부양하고 투자를 이끌어낸다고 믿기 때문이다. 2026년 새해, 이 시장은 또 하나의 거대한 내러티브에 취해 있다. 바로 '예측 시장(Prediction Market)'이다.
대형 플랫폼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예측 시장을 내놓겠다고 아우성치는 꼴을 보니 씁쓸한 기시감(旣視感)이 든다. 불과 4개월 전, 모든 거래소가 '무기한 선물 탈중앙화거래소(Perp DEX)' 간판을 내걸던 때와 판박이다. 시간을 조금 더 돌려보자. 디지털 파일 조각에 수억 원을 호가하게 만들었던 'NFT(대체불가토큰)' 광풍, 아무도 쓰지 않는 도로를 깔겠다며 난립했던 '레이어2(L2)' 열풍은 어땠나.
지금 그 화려했던 내러티브의 전장(戰場)에는 무엇이 남았는가. 대다수 NFT는 휴지 조각이 됐고, 유령 도시가 된 L2 체인들은 서버 비용만 축내고 있다. 4개월 전 우후죽순 생겨난 DEX들 역시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중이다. 내러티브를 쫓은 대가는 참혹했다.
이 바닥의 실패 공식은 지겨울 정도로 똑같다. 선구자가 길을 열면, 거대 자본이 냄새를 맡고, 곧이어 수많은 '아류(亞流)'들이 몰려든다. 하이퍼리퀴드가 성공하자 개나 소나 뛰어들었던 것처럼, 올해는 폴리마켓과 칼시를 흉내 낸 복제품들이 판을 칠 것이다.
단언컨대, 앞으로 6개월 뒤면 이 내러티브 또한 낡은 것이 된다. 그땐 '암호화폐 프롭 트레이딩(Prop Trading)' 같은 새로운 먹잇감이 등장해 또다시 철새들을 유혹할 것이다.
문제는 '시차(Time-lag)'다. 당신이 유행을 감지하고 허겁지겁 뛰어들었을 때, 선도 기업들은 이미 저만치 앞서가고 있다. 후발 주자들에게 예측 시장은 사활을 건 비즈니스가 아니라 그저 트렌드에 뒤처지지 않기 위한 '구색 맞추기'일 뿐이다. 진정성 없이 남의 성공 방정식을 베끼는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 전략은 이제 시효가 다했다. 내러티브를 쫓는 후발 주자는 결국 선도 기업의 생태계만 살찌우고 사라지는 '불쏘시개'로 전락할 뿐이다.
감히 예언하건대, 지금 난립하는 예측 시장 플레이어의 90%는 1년 뒤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살아남는 건 오리지널 솔루션을 가진 소수와, 확실한 틈새를 파고든 '진짜'들뿐이다.
2026년, Web3 리더들에게 고한다. 제발 내러티브를 쫓지 마라.
트렌드는 파도와 같아서 휩쓸리면 죽고, 타면 즐겁지만, 남의 파도만 갈아타서는 영원히 표류할 뿐이다. '이번 메타(Meta)는 무엇인가'를 묻지 말고, '우리의 본질은 무엇인가'를 물어야 한다. 가장 소중한 자원인 시간을 남의 이야기 베끼는 데 허비하지 말고, 자신이 진정 믿는 프로덕트에 천착(穿鑿)하라.
"목적지를 모르는 선장에겐 순풍(順風)도 소용없다"는 로마 철학자 세네카의 말은, 내러티브라는 환각제에 취해 비틀거리는 이 시장에 내리치는 죽비와도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