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 시장에서 ‘대형 트레이더’들이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거래 흔적을 숨기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는 전략 노출과 가격 변동을 동시에 유발하며, 시장 구조 자체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전통 금융과 달리, 크립토 시장은 모든 거래가 공개되는 구조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2025년 1월 기준 미국 주식 거래의 절반 이상이 ‘다크풀’과 장외 시장에서 이뤄졌지만, 디파이(DeFi)와 탈중앙화 거래소(DEX)는 여전히 모든 주문과 체결 내역이 온체인에 기록된다. 하이퍼리퀴드(Hyperliquid)나 각종 DEX에서 발생하는 거래 역시 누구나 추적 가능하며, 디파이라마나 아캄 같은 데이터 분석 플랫폼이 이를 쉽게 가공해 제공한다.
이 같은 ‘투명성’은 역설적으로 대형 유동성 공급자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한다. 시장을 움직일 만큼 큰 자금이 들어오면, 다른 참여자들이 이를 즉시 포착하고 전략을 ‘복제’하기 때문이다. 고퀀트(GoQuant) 공동 창업자 데니스 다리오티스(Denis Dariotis)는 “하이퍼리퀴드에서는 주요 마켓메이커가 3주마다 전략을 바꿔야 할 정도”라며 이를 ‘알파 문제’라고 설명했다.
투명성의 역설… 크립토 시장의 구조적 한계
문제는 단순한 전략 노출에 그치지 않는다. 마켓메이커는 시장 유동성을 유지하는 핵심 플레이어지만, 온체인 데이터가 공개되면서 종종 ‘희생양’이 되기도 한다. 최근 테라·루나 사태에서 제인 스트리트의 거래가 도마에 오른 사례처럼, 대형 트레이더의 움직임이 추적되면 특정 서사가 형성되고 기업은 불필요한 논란에 휘말린다.
전통 금융에서는 이러한 거래가 다크풀에서 처리되며, 사후 보고 체계를 통해 규제를 받는다. 반면 암호화폐 시장은 ‘완전한 공개’ 구조로 인해 동일한 거래도 훨씬 큰 파장을 낳는다.
GoDark 등장… ‘보이지 않는 거래소’ 실험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퀀트는 솔라나 기반 DEX ‘고다크(GoDark)’를 오는 5월 출시할 계획이다. 핵심 기술은 ‘영지식증명(ZKP)’으로, 거래 세부정보를 참여자는 물론 노드 운영자에게도 숨긴다. 주문 매칭 과정조차 외부에서 확인할 수 없는 구조를 지향한다.
다만 기술적 한계는 여전히 존재한다. 고다크의 테스트 기준 주문 매칭 속도는 25~50밀리초로, 기존 DEX보다 빠르지만 중앙화 거래소에 비하면 한 단계 느린 수준이다. 개인 투자자에게는 큰 차이가 아닐 수 있지만, 핵심 타깃인 마켓메이커에게는 민감한 요소다.
또 다른 과제는 ‘유동성’이다. 고다크는 하이퍼리퀴드의 HLP 볼트처럼 이용자 자금을 모아 마켓메이킹에 활용하고 수수료를 배분하는 구조를 도입한다. 하지만 유사 모델을 도입한 다수 DEX는 인센티브 종료 후 거래량이 급감하는 문제를 겪었다.
규제 충돌 가능성… 프라이버시 vs 투명성
규제 역시 중요한 변수다. 전통 다크풀은 거래 전 정보만 비공개일 뿐, 사후 보고와 감독을 받는다. 반면 고다크는 구조적으로 완전한 거래 기록을 제공하기 어렵다. OFAC(미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 자동 필터링을 도입했지만, 최근 3년간 암호화폐 규제 기조가 ‘투명성 강화’에 맞춰져 있다는 점에서 충돌 가능성이 제기된다.
결국 관건은 두 가지다. 충분한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규제 당국이 이 ‘보이지 않는 거래소’를 어디까지 허용할지다. 암호화폐 시장이 전통 금융의 다크풀 구조를 받아들일지, 아니면 투명성 원칙을 유지할지는 이제 시험대에 올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