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에서 선호하는 출처로 추가

[권성민 칼럼] 혼자서 AI로 ‘MS 오피스’를 만들었다… 구독료 제국에 던진 돌멩이

어도비 7종 이어 워드·엑셀·파워포인트까지 무료 공개… AI가 낮추는 소프트웨어 개발의 문턱, 한국 IT·언론 산업도 예외 아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뜨린 것은 더 크고 강한 무기를 가졌기 때문이 아니었다. 상대와 같은 방식으로 싸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이 오래된 이야기를 떠올리게 하는 일이 벌어졌다.

미국의 한 개발자가 인공지능(AI)을 이용해 마이크로소프트(MS)의 워드·엑셀·파워포인트를 본뜬 프로그램을 만들고, 누구나 무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공개했다. 며칠 전에는 어도비의 포토샵과 일러스트레이터 등 대표 프로그램 7종을 비슷하게 만들어 내놓았다.

물론 골리앗이 쓰러진 것은 아니다. 이 프로그램들은 아직 오류가 많고, 실제 업무에 쓰기에는 부족하다. MS와 어도비가 수십 년간 구축한 기술과 고객 기반에 비하면 작은 실험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이번 사건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지금까지 막대한 자본과 수많은 개발자가 있어야 가능했던 소프트웨어 개발에 개인이 AI를 앞세워 도전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AI가 위협하는 것은 일자리만이 아니다. 거대 소프트웨어 기업들이 쌓아 올린 사업 구조도 시험대에 오르고 있다. 나아가 한국의 소프트웨어 산업은 물론, 언론처럼 기술을 이용해 콘텐츠와 서비스를 제공하는 산업에도 변화가 불가피해 보인다.

■ 어도비 7종 만들더니, 이번엔 MS 오피스까지

주인공은 미국 애틀랜타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브랜던 토머스다.

그는 이달 초 어도비의 대표 프로그램 7종을 본뜬 무료 소프트웨어를 공개했다. 포토샵, 일러스트레이터, 프리미어 프로 등 디자이너와 영상 제작자들이 사용하는 프로그램들이다. 개발에는 앤트로픽의 AI 모델 '클로드'를 활용했다.

완성품은 아니었다. 토머스 스스로도 초기 시험판이며 실제 업무에 사용하기에는 부족하다고 인정했다. 미국 IT 매체들도 오류는 많지만 실제로 실행된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리고 며칠 뒤 이번에는 MS 오피스로 과녁을 옮겼다.

워드를 본뜬 '워드크래프트', 엑셀을 본뜬 '그리드크래프트', 파워포인트를 본뜬 '덱크래프트'다. 이름부터 원본을 숨길 생각이 없다.

더 주목할 점은 소스코드까지 공개했다는 사실이다. 개발자들이 이용하는 깃허브에 코드를 올려 누구나 내려받고 수정할 수 있도록 했다. 돈을 내지 않아도 되고, 다른 개발자가 기능을 추가할 수도 있다. 실제로 공개 이후 여러 개발자의 참여도 이어지고 있다.

한 개인이 주도한 프로젝트가 세계 최대 소프트웨어 기업들의 대표 제품에 잇달아 도전장을 내민 셈이다.

■ “워드 기능 88% 구현”… 숫자에 속아서는 안 된다

개발 프로젝트가 공개한 수치는 제법 그럴듯하다.

워드크래프트는 워드 문서(.docx)를 열고 저장할 수 있다. 개발진에 따르면 워드의 상단 메뉴 기능 약 88%를 구현했고, 실제 업무를 완전히 대체할 수 있는 수준은 약 60%라고 한다. 엑셀을 본뜬 그리드크래프트는 주요 함수 523개 중 513개를 구현했다고 주장한다. 파워포인트를 본뜬 덱크래프트도 기능 범위의 약 79%를 갖췄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숫자만 믿어서는 안 된다.

메뉴 버튼의 88%를 만들었다는 것과 실제 워드 기능의 88%가 정상 작동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얘기다. 자동차에 운전석 버튼을 거의 다 달았다고 해서 그 차가 제대로 달리는 것은 아니다.

개발진이 평가한 엑셀 대체 프로그램의 실무 준비도는 약 50%, 파워포인트 대체 프로그램은 약 55%에 그친다. 워드 파일 역시 불러왔다가 다시 저장하는 과정에서 차트나 복잡한 도형 등이 제대로 보존되지 않을 수 있다. 실제 회사 문서와의 호환성이나 안정성도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다.

당장 중요한 계약서나 재무제표를 이 프로그램으로 작성하는 것은 무리다. 저장 한 번 잘못했다가 보고서의 그래프가 사라진다면 아낀 구독료보다 야근 수당이 더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시도를 실패작으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핵심은 MS 오피스를 당장 대체할 수 있느냐가 아니라, 비슷한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필요한 시간과 비용이 얼마나 줄어들 수 있느냐에 있기 때문이다.

■ 진짜 공격 대상은 프로그램이 아니라 '구독료'

이번 프로젝트가 관심을 끄는 또 다른 이유는 소비자들의 불만이다.

소프트웨어 산업은 지난 10여 년간 프로그램 판매에서 구독 서비스 중심으로 빠르게 바뀌었다. 예전에는 워드나 엑셀을 한 번 구매하면 몇 년씩 사용했다. 지금은 매달 돈을 내야 한다. 넷플릭스, 유튜브, 클라우드 서비스에 업무용 프로그램까지, 소프트웨어에도 월세를 내는 시대가 됐다.

기업 입장에서는 안정적인 매출을 확보할 수 있는 훌륭한 사업 모델이다. 그러나 소비자에게는 매달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 늘어나는 구조다.

어도비는 2024년 미국 정부로부터 소송을 당했다. 구독 서비스의 중도 해지 수수료를 충분히 알리지 않고 해지 절차도 어렵게 만들었다는 이유였다. 미국 법무부는 올해 3월 민사 제재금 7500만 달러와 고객 대상 무료 서비스 7500만 달러 등 총 1억5000만 달러 규모의 합의안을 발표했다. 어도비는 위법 행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MS 역시 지난해 1월 개인용 오피스 구독 상품에 AI 비서 '코파일럿'을 추가하면서 요금을 올렸다. 미국 기준 개인용은 월 6.99달러에서 9.99달러로, 가족용은 9.99달러에서 12.99달러로 인상됐다.

AI 기능을 원하지 않는 사용자에게도 비용 부담이 늘어난 것이다.

시장 규모도 엄청나다. MS가 2025년 6월 말 기준으로 밝힌 개인용 마이크로소프트 365 구독자는 8900만 명에 달한다. 대한민국 인구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정기적으로 문서 프로그램 이용료를 내는 셈이다.

물론 구독 서비스가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지속적인 보안 업데이트, 클라우드 저장, 협업 기능 등에는 비용이 들어간다.

문제는 소비자가 그만한 가치를 받고 있느냐다. 다른 프로그램으로 옮기기 어렵다는 이유만으로 계속 더 많은 돈을 내야 한다면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다.

토머스의 프로젝트는 바로 이 지점을 건드렸다. 기존 제품과 비슷한 기능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더 적은 비용으로 개발할 수 있다면, 소비자에게 새로운 선택지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 소프트웨어 개발의 문턱이 낮아지고 있다

사실 무료 오피스 프로그램은 오래전부터 존재했다. 리브레오피스와 온리오피스 같은 대안도 있다. 무료 프로그램이 등장했다는 것 자체는 새로운 사건이 아니다.

이번에 주목해야 할 것은 개발 방식이다.

과거 MS 오피스와 같은 프로그램을 처음부터 만들려면 수많은 개발자가 필요했다. 기능을 설계하고 코드를 작성하고 오류를 수정하는 작업에 막대한 시간과 자본이 들어갔다.

그런데 이제는 한 사람이 AI에 원하는 기능을 설명하고 코드를 작성하도록 지시할 수 있다. 오류가 발견되면 AI와 함께 수정하고, 새로운 기능도 빠르게 추가할 수 있다.

물론 AI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은 아니다. 복잡한 프로그램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려면 여전히 숙련된 개발자의 판단과 검증이 필요하다. 이번 프로젝트 역시 실제 투입된 총 작업 시간과 비용이 독립적으로 검증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변화의 방향은 분명하다.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데 필요한 인력과 비용의 문턱이 낮아지고 있다.

이것은 기존 IT 기업에는 위협이지만 새로운 사업자에게는 기회다. 과거에는 자본이 부족해 도전하지 못했던 영역에서도 소규모 개발팀이나 개인이 제품을 만들어 시장 반응을 확인할 수 있게 된다.

특히 AI가 단순히 코드를 작성하는 수준을 넘어 프로그램을 직접 조작하는 단계로 발전하고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 토머스가 공개한 프로그램들은 AI가 명령을 내려 문서를 작성하고, 데이터를 계산하고, 발표 자료를 편집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앞으로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주체가 사람뿐 아니라 AI 에이전트로 확대될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 경우 기존 프로그램의 복잡한 메뉴와 화면 구성 자체가 경쟁력의 핵심이 아닐 수도 있다.

■ 한국은 소프트웨어를 사는 나라에서 만드는 나라로 갈 수 있을까

한국에도 중요한 변화다.

우리 기업과 공공기관은 오랫동안 한글과 MS 오피스라는 두 가지 문서 환경을 사용해 왔다. 국내 공문서는 한글로 작성하고, 해외 거래처와는 워드나 엑셀을 사용한다. 기관과 기업마다 여러 종류의 라이선스를 구매해야 하고 문서 호환 문제도 감당해야 한다.

문제는 단순히 라이선스 비용이 아니다. 오랫동안 특정 프로그램으로 문서를 만들고 업무를 처리하다 보면 다른 제품으로 옮기는 것 자체가 부담이 된다. 파일 형식과 서식, 업무 절차까지 기존 시스템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AI는 이 구조에 새로운 선택지를 제공할 수 있다. 기존 프로그램의 기능을 적은 비용으로 구현하고, 특정 산업이나 기관에 필요한 소프트웨어를 직접 만드는 일이 쉬워질 수 있다.

정부가 말하는 '소프트웨어 주권'도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 국산 소프트웨어를 보호하거나 외산 제품을 대체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공개 표준과 호환성을 확대하고, 공개된 기술과 AI를 활용해 새로운 사업자가 경쟁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공공기관이 사용하는 소프트웨어는 특정 업체의 제품인지보다 문서의 장기 보존, 보안, 데이터 이동 가능성, 다른 프로그램과의 호환성을 더 중요하게 평가해야 한다. 그래야 한 번 선정된 제품이 사실상 영구적인 표준이 되는 구조를 줄일 수 있다.

한국의 중소 소프트웨어 기업에도 기회가 있다. 글로벌 기업의 범용 프로그램과 같은 규모로 경쟁하기보다 국내 법률, 세무, 회계, 의료, 교육 등 특정 분야에 필요한 제품을 빠르게 개발할 수 있다.

다만 AI로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 쉬워졌다고 해서 사업까지 쉬워지는 것은 아니다. 보안과 유지보수, 고객 지원과 책임은 여전히 기업의 몫이다.

정부와 기업 모두 이제 중요한 질문을 바꿔야 한다. 어떤 소프트웨어를 구매할 것인가에 앞서, 우리가 필요한 소프트웨어를 직접 만들거나 개선할 수는 없는가를 물어야 한다.

■ 언론 산업에도 같은 변화가 시작됐다

이 변화는 언론 산업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언론사 역시 수많은 소프트웨어에 의존한다. 기사를 작성하고 편집하는 콘텐츠관리시스템(CMS), 사진과 영상을 처리하는 프로그램, 독자 데이터를 분석하는 도구, 뉴스레터 발송 시스템, 구독 및 광고 관리 프로그램까지 대부분 외부 업체의 기술을 사용하거나 별도로 개발해 왔다.

규모가 작은 언론사에는 이런 기술 비용과 개발 인력이 상당한 부담이다.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고 싶어도 외주 개발비나 유지보수 비용 때문에 포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나 AI를 활용하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기자가 작성한 기사를 여러 언어로 번역하고, 영상과 오디오로 변환하며, 관련 기사와 데이터를 자동으로 연결하는 시스템을 소규모 인력으로 개발할 수 있다. 독자의 관심에 맞춰 뉴스를 추천하거나 특정 기업과 산업의 변화를 추적하는 서비스도 이전보다 적은 비용으로 시도할 수 있다.

과거 대형 언론사만 감당할 수 있었던 기술을 중소 언론사도 활용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이다. 언론사가 기사를 생산하는 조직을 넘어 자체적인 뉴스 기술과 서비스를 개발하는 조직으로 바뀔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AI가 언론사의 기술 개발 비용을 낮추는 동시에, 언론사가 생산하는 콘텐츠의 경제적 가치까지 압박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AI는 이미 뉴스를 요약하고 여러 매체의 기사를 비교하며 독자의 질문에 직접 답하고 있다. 독자가 검색 결과에서 원문 기사를 찾아 읽기보다 AI의 답변만으로 정보를 얻는 일이 늘어난다면, 언론사는 취재 비용을 부담하면서도 독자 유입과 광고 수익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할 수 있다.

결국 언론사는 두 가지 변화를 동시에 맞게 된다. 뉴스를 생산하고 전달하는 기술은 저렴해지지만, 뉴스로 수익을 내는 일은 오히려 어려워질 수 있다.

이런 환경에서 단순한 보도자료 재작성이나 이미 알려진 정보의 요약만으로 경쟁력을 유지하기는 어렵다. AI도 할 수 있는 일을 사람이 조금 더 빨리 한다고 해서 독자가 돈을 낼 이유는 없다.

반면 현장에서 직접 취재한 사실, 독자적인 정보원, 권력을 감시하는 능력, 정확한 검증, 산업에 대한 깊은 이해, 그리고 오랫동안 쌓아온 독자의 신뢰는 쉽게 복제할 수 없다.

언론사가 AI 시대에 지켜야 할 경쟁력은 바로 여기에 있다.

경영진이 해야 할 일도 분명하다. AI로 기자를 몇 명 줄일 수 있는지 계산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AI로 절감한 기술과 운영 비용을 취재력과 콘텐츠의 질, 독자와의 직접적인 관계를 강화하는 데 투자해야 한다.

기술이 저렴해진다고 해서 저널리즘의 가치까지 저렴해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정보가 넘쳐날수록 무엇이 사실인지 확인하고, 그 의미를 설명하는 언론의 책임은 더 무거워진다.

■ 코드는 복제할 수 있어도 신뢰는 복제할 수 없다

이런 변화는 암호화폐 업계에 낯설지 않다.

블록체인 산업은 처음부터 소스코드를 공개하고 누구나 이를 활용해 새로운 서비스를 만드는 문화 속에서 성장했다. 대표적인 탈중앙화 거래소의 코드가 공개되자 비슷한 거래소들이 잇달아 등장했다.

누구나 코드를 가져다 사용할 수 있었지만 모두가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

같은 코드로 거래소를 만들더라도 이용자가 없으면 소용이 없다. 유동성을 확보하고 보안을 검증받아야 하며 무엇보다 신뢰를 얻어야 한다. 결국 살아남는 것은 코드만이 아니라 서비스를 둘러싼 생태계였다.

전통적인 소프트웨어 산업도 같은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다.

MS의 경쟁력은 워드에 얼마나 많은 기능이 들어 있느냐에만 있지 않다. 수십 년 동안 축적된 문서를 문제없이 열 수 있다는 믿음, 기업들이 요구하는 보안과 관리 체계, 다른 업무 시스템과의 호환성이 더 중요할 수 있다.

언론 산업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뉴스 사이트를 만들고 AI로 기사를 생산할 수 있는 시대라면, 좋은 언론사를 결정하는 것은 웹사이트의 기능이나 기사 생산량이 아니다. 독자가 다른 곳에서는 얻기 어려운 정보를 제공하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AI가 코드를 작성하고 콘텐츠를 생산하는 비용을 낮출수록, 역설적으로 쉽게 복제할 수 없는 자산의 가치는 더욱 높아질 것이다.

소프트웨어 기업에는 안정성과 고객의 신뢰가, 언론사에는 독자적인 취재력과 신뢰할 수 있는 정보가 그 자산이다.

■ 이제 돈을 받는 쪽이 가치를 증명해야 한다

토머스가 만든 오피스 프로그램은 아직 MS의 상대가 되기 어렵다. 기능도 부족하고 안정성도 검증되지 않았다. 당장 MS 오피스 구독을 해지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미완성 프로그램을 만든 개인 개발자의 해프닝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중요한 것은 결과물이 아니라 그것을 만드는 데 필요한 비용과 시간의 변화다. 거대 기업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소프트웨어 개발에 개인이 AI를 앞세워 도전할 수 있게 됐다. 이것만으로도 기존 기업들이 경계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물론 AI가 모든 소프트웨어를 대체하지는 못한다. 보안과 안정성, 호환성과 유지보수에는 여전히 막대한 비용이 든다. 그러나 그것이 높은 구독료를 언제까지나 정당화하는 면허가 될 수는 없다. 고객이 다른 제품으로 옮기기 어렵다는 사실만으로는 기업의 경쟁력을 증명할 수 없다.

한국도 이 변화를 남의 일로 봐서는 안 된다. 정부는 특정 소프트웨어 기업을 보호하는 데 머물 것이 아니라, 공개 표준과 호환성을 확대하고 새로운 사업자가 경쟁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기업 역시 외국산 기술에 대한 의존을 걱정하기에 앞서, AI를 활용해 스스로 경쟁력 있는 제품을 만들 수 있는지부터 따져봐야 한다.

언론 산업에는 더 직접적인 경고다. AI로 뉴스 사이트를 만들고 기사를 요약하는 일이 쉬워질수록, 단순히 뉴스를 생산하고 전달하는 것만으로는 독자의 선택을 받기 어렵다. 언론사가 지켜야 할 것은 기존의 제작 방식이나 조직 규모가 아니다. 직접 취재한 사실, 권력을 감시하는 능력, 정확한 검증, 그리고 독자의 신뢰다. 기술 비용이 줄어든 만큼 그 자원을 취재와 콘텐츠의 질에 투자하지 못하는 언론사는 AI를 도입하고도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

결국 문제는 누가 더 좋은 AI를 쓰느냐가 아니다. AI로 누구나 비슷한 것을 만들 수 있는 시대에 무엇으로 고객의 돈과 시간을 받을 것인가다.

기존 기업들은 이제 질문을 바꿔야 한다. 고객이 왜 떠나지 못하는지가 아니라, 왜 계속 남아 있어야 하는지를 증명해야 한다. 소프트웨어 기업은 구독료에 걸맞은 가치를, 언론사는 구독할 만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그것이 어렵다면 가격과 사업 모델부터 다시 생각하는 것이 순서다.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뜨릴 수 있었던 것은 골리앗보다 강해서가 아니었다. 골리앗이 익숙했던 싸움의 규칙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토머스가 던진 돌멩이 하나로 MS가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AI가 개발의 진입 장벽을 낮추는 이상, 기존 기업의 규모와 자본만으로 경쟁자의 도전을 막을 수는 없다.

AI 시대에 거대 기업이 진정으로 경계해야 할 것은 자신보다 작은 경쟁자가 아니다. 자신들이 누려온 시장 지위가 앞으로도 당연히 유지될 것이라는 착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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