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상원이 ‘스테이블코인’ 규제를 서두르되, 파운드화 연동 스테이블코인 시장이 사실상 작동 불가능해질 정도의 규제는 피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미국과 유럽연합(EU)에 뒤처진 상황에서 지나치게 엄격한 잣대가 오히려 영국의 디지털자산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13일(현지시간) 로이터에 따르면 영국 상원 금융서비스규제위원회는 이날 보고서를 통해 “영국은 미국과 EU에 뒤처져 있다”며 “명확한 규제 부재가 영국 내 스테이블코인 개발과 투자를 억눌렀다”고 밝혔다. 전 세계적으로 달러 연동 스테이블코인인 테더(USDT)와 서클의 USD코인(USDC)이 빠르게 성장하는 가운데, 영국은 아직 파운드화 기반 토큰의 제도화를 놓고 줄다리기를 이어가고 있다.
위원회는 영란은행(BoE)과 금융행위감독청(FCA)이 제시한 기본 틀에는 대체로 동의했다. 특히 법정화폐 연동 스테이블코인이 1대1로 고품질 자산에 담보돼야 한다는 원칙과,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발행사에 대한 영란은행의 비상 대출 장치(backstop lending facility) 구상은 지지했다.
다만 일부 세부안은 영국 내 스테이블코인의 사업성을 해칠 수 있다고 봤다. 보고서는 시스템 발행사가 담보자산의 최소 40%를 무이자 중앙은행 예치금으로 보유하도록 하는 방안이 “상당한 비판”을 받아왔으며, 발행사의 생존 가능성과 영국 시장의 국제 경쟁력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기업과 개인의 보유 한도를 두는 임시 제한안 역시 파운드화 스테이블코인의 성장을 불필요하게 막을 수 있다고 했다.
‘이자 금지’ 논쟁도 변수…영국, EU·미국과 비슷한 길
수익 제공을 둘러싼 논쟁도 뜨겁다. 영란은행의 초안은 스털링 표시 시스템 스테이블코인 보유자에게 보상을 지급하지 못하도록 해, 유럽연합의 가상자산시장법(MiCA)과 비슷한 방향을 취하고 있다. 미국의 GENIUS Act 역시 결제용 스테이블코인 발행사의 이자 지급을 금지한다. 다만 미국에서는 거래소 등 중개업자가 제공하는 ‘리워드’ 허용 여부를 두고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위원회는 스테이블코인을 투자상품이 아니라 빠르고 저렴한 결제 수단으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엄격한 준비금 규정과 이자·보상 금지가 결합하면 영국 발행 토큰의 ‘사업성’과 경쟁력이 약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카드형 리워드나 비이자성 인센티브까지 허용되지 않을 경우 타격이 더 클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번 보고서는 몇 달간 이어진 증언 청취와 질의 끝에 나왔다. 위원회는 업계와 학계 인사들에게 스테이블코인이 단순히 암호화폐 시장의 ‘입출금 창구’에 머물지, 금융안정성과 은행 자금조달, 소비자 보호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집중적으로 따졌다. 또 미국 GENIUS Act가 비은행 발행사를 어떻게 다루는지도 세밀하게 검토했다.
위원회는 불법활동을 부추길 새 통로가 생겨서는 안 된다고 선을 그으면서도, 영국이 파운드화 스테이블코인 산업을 단순 규제 대상이 아니라 육성해야 할 분야로 봐야 한다고 제안했다. 재무부와 영란은행, FCA에는 기존 일정대로 규제를 추진하되, 이중 규제 구조를 명확히 하고 보유 한도와 준비금 요건을 재조정해 스테이블코인이 영국 내 다른 결제수단과 ‘경쟁’할 수 있도록 만들라고 촉구했다.
결국 이번 메시지는 분명하다. 영국이 스테이블코인 규제를 완성하는 속도도 중요하지만, 그 규제가 파운드화 기반 디지털 결제의 상업적 가능성까지 꺾어버리면 오히려 시장 주도권을 놓칠 수 있다는 점이다. 파운드화 스테이블코인이 실제 결제 시장에서 의미 있는 자리를 차지하려면, 규제와 성장의 균형이 핵심이 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