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기술이 보안 산업의 패러다임을 뒤흔들고 있다. 데이터 보호가 단순히 저장과 암호화의 문제를 넘어, AI 기반 위협 탐지 및 대처 전략으로 급속히 진화하고 있는 가운데, 기업들은 ‘보안 내재화된 AI 시스템’ 구축을 핵심 과제로 설정하고 있다. 최근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열린 ‘데이터 보호 및 AI 서밋’에서도 이 같은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흐름이 재확인됐다.
이번 행사의 핵심 주제는 ‘AI가 AI를 방어하는 환경’이었다. 쿠브 리서치(theCUBE Research)의 수석 애널리스트 크리스토프 버트랑은 “AI가 사이버 공격 수단으로 악용되는 만큼, 결국 AI로 이를 방어해야 하는 시대”라고 강조했다. 수많은 기업이 보유한 데이터 대부분이 AI 전략에 활용되기엔 부족한 상태라는 점 역시 지적됐다. 쿠브의 또 다른 분석가 스콧 헤브너도 “기업 보유 데이터의 약 95%는 현재 AI 활용에 있어 준비 부족 상태”라며, 데이터는 단지 저장을 넘어 지속적으로 안전성과 무결성을 검증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지능형 스토리지 분야에서는 인피니닷(Infinidat)이 주목을 받았다. 인피니닷의 마케팅 총괄 에릭 허조그는 “플래시 스토리지가 포화되면 성능 저하가 발생하지만, 우리는 AI 기반 ‘뉴럴 캐시’를 활용한 계층형 스토리지 기술로 이를 해결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자사 기술은 AI와 머신러닝을 결합해 데이터를 자동으로 최적 배치함으로써 고성능을 유지하며 확장성을 높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이버 복원력 분야에서도 AI의 역할은 점차 중요해지고 있다. 사이버 위협 탐지 기업인 인덱스 엔진(Index Engines)은 랜섬웨어 공격의 진화를 언급하며, AI 도입이 기업의 데이터 방어 역량을 결정짓는 중요한 분기점이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전략 담당 조지 비리는 “AI 기반 자동화된 공격이 늘어나면서 방어 체계의 대대적인 재설계가 불가피하다”고 경고했다.
기존 기술과의 융합도 주목된다. 스펙트라 로직(Spectra Logic)은 오랜 역사를 가진 테이프 저장 기술에 AI를 결합해 대용량 데이터를 안전하고 에너지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마케팅 총괄 미치 시글은 “수 페타바이트에 이르는 대형 AI 모델 버전을 안전하게 백업하면서도 정전 중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는 테이프가 여전히 강력한 대안”이라고 설명했다.
데이터 백업 시장에서도 움직임이 감지된다. 백업 솔루션 기업 오브젝트 퍼스트(Object First)는 신제품 ‘Ootbi’를 공개했고, 이는 비앱(Veeam) 연동이 가능한 객체 기반 백업 기술을 통해 기업 운영 체제에 대한 악성 접근을 원천 차단하는 기능을 갖추고 있다. 기술 총괄 스털링 윌슨은 “AI 기반 복구 테스트가 가능한 샌드박스 환경이 필수적인 요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보 보안 인식 재고를 위한 AI 활용 사례도 소개됐다. 노우비포(KnowBe4)는 실시간 사용자 행태를 기반으로 학습을 유도하는 ‘저스트 인 타임(Just-in-Time) 보안 교육’을 제시했다. 보안 인식 강화 전문가 자바드 말릭은 “AI가 실시간으로 보안 위협을 감지하고, 사용자 행동에 따라 적절한 경고를 주는 방식으로 보안 시스템과 통합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AI 주도형 데이터 보호 전략이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 가운데, 이번 서밋은 기술적 진보 이상의 접근이 요구된다는 점을 보여줬다. 규제 대응,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 수집 및 저장, 그리고 전사적 AI 인프라 보안 내재화를 위한 적극적인 투자가 필요한 시점이다. AI 기술의 발전 속도에 맞춰 보안도 진화하지 않는다면, 앞으로의 위협은 더 복잡하고 빠르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