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통신사들이 국가 수준의 인공지능 자립을 뜻하는 ‘소버린 AI’ 개발 경쟁에서 핵심 주체로 부상하고 있다. 클라우드 기업 중심으로 여겨지던 AI 생태계에서 이제 통신사들이 중요한 기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 것이다.
시장조사기관 피어스네트워크는 최근 발표한 보고서 ‘AI 자주권(AI Sovereignty)’에서 이 같은 분석을 내놨다. 이 보고서는 엔비디아의 후원을 받아 진행됐으며, AI 기술 활용의 주도권이 빨라지고 있는 가운데 통신사의 역할이 기존 데이터 전송이나 음성 서비스라는 틀을 넘어서는 거대한 기회를 제공한다고 강조했다. AI 자주권은 국가가 AI 기술과 인프라를 외국 기술에 의존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구축하고 활용하겠다는 전략적 개념으로, 최근 각국에서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피어스네트워크는 통신사들이 AI 인프라 구축에 필요한 여러 조건을 이미 보유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우선 통신사들은 데이터센터를 직접 운영하면서 클라우드 기반 인프라 구축 경험을 갖춘 데다, 전국 단위 네트워크를 안정적으로 관리해온 기술력도 축적돼 있다. 여기에, 오랜 기간 정부 및 다양한 산업과 협력해온 신뢰 관계와 현지 규제에 대한 높은 이해도 역시 중요한 경쟁 요소로 꼽혔다. 이러한 장점들은 신규 업체가 인프라를 처음부터 구축할 때 발생하는 시간과 자금의 부담을 덜어주는 구조적 강점으로 작용한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세계 주요 통신사들은 AI 데이터센터를 비롯한 첨단 인프라 확충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국내에서도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이동통신 3사는 이미 자체 데이터센터를 운영 중이며, 최근에는 대규모언어모델(LLM)과 생성형 AI 같은 고난도 AI 서비스를 수용할 수 있도록 고성능 컴퓨팅 인프라 확장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 역시 통신사가 AI 주도권을 키워가는 흐름의 하나로 풀이된다.
다만 AI 인프라를 국가 차원에서 확대하려면 막대한 초기 투자금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민관 협력과 정부의 전략적 지원이 병행돼야 한다는 의견도 동시에 제기됐다. 국가 AI 생태계를 강화하기 위한 공공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보고서는 특히 소버린 AI가 단순한 기술 문제가 아니라 국가 경제 구조와 미래 산업 주도권에 직결된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보고서는 국가가 자국 민족과 문화, 규범, 언어에 맞춘 AI 생태계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도 밝혔다. 현재 대부분의 대규모언어모델이 영어 인터넷 데이터를 중심으로 학습되고 있어, 이를 각국의 현실에 맞춰 수정·보완하려면 자국 기반의 지식 체계와 기술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기술 소비자가 아닌, AI 기술의 창조적 참여자로 나서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 같은 흐름은 앞으로 각국 정부와 통신사 간 협력을 더욱 강화시키고, AI 기술 주도권 확보를 위한 국가 경쟁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 특히 AI와 인프라 부문의 전략적 자립을 확립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