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산업에 대한 투자가 급증하면서 월가에서 이른바 ‘AI 거품론’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대형 기술기업들이 수십조 원의 자금을 끌어들여 AI 관련 설비에 투자하고 있는 가운데, 이들의 성장성이 의문을 낳으며 금융시장에서도 위험 분산 상품인 신용부도스와프(CDS)에 대한 수요가 크게 증가하고 있다.
최근 금융시장의 흐름을 보면, 대형 클라우드 서비스 기업들이 AI를 위한 데이터센터 증설과 차세대 반도체 도입 등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고 있다. 예컨대 오라클과 코어위브는 수십억 달러 수준의 부채를 안고 있으며, 메타플랫폼은 10월에만 AI 사업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300억 달러 규모의 채권을 발행했다. 이에 따라 이들 기업에 연계된 CDS 거래가 크게 늘며 위험 회피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가 인용한 파생상품 청산기관 DTCC 자료에 따르면, 이러한 CDS 거래는 9월 초 이후 90% 가까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CDS 수요가 늘고 있는 배경에는 AI 산업에 대한 투자 확대에 비해 실적이나 성장 지표가 기대에 못 미친다는 실망감이 깔려 있다. 대표적으로 오라클은 최근 실적 발표에서 클라우드 부문 매출이 시장 기대치를 밑돌았고, 이에 따라 주가가 급락하며 회사채까지도 투매되는 양상을 보였다. 동시에 오라클의 CDS 가격은 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또 다른 AI 반도체 기업인 브로드컴과 엔비디아 역시 투자자들의 신뢰에 균열이 생기면서 각각 주가가 큰 폭으로 하락했다.
투자은행 JP모건은 AI 관련 투자자금이 향후 수년 내 급증할 것으로 보고 있다. 자금 조달 여력이 있는 투자등급 기술기업들이 2030년까지 약 1조5천억 달러, 우리 돈으로 약 2천210조 원에 달하는 규모의 자금을 투입할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았다. 그러나 이러한 장기적 기대와 달리, 현재 순이익 증가율은 둔화세를 보이고 있다. 블룸버그 인텔리전스 자료에 따르면 미국 7대 기술기업의 내년 순이익은 전년 대비 18% 증가에 그칠 것으로 예측되며, 이는 최근 4년 가운데 가장 낮은 수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I 거품론에 반론도 만만치 않다. 현재 테크 중심의 나스닥100 지수의 주가수익비율(PER)은 약 26배로, 2000년대 초 닷컴버블 당시 80배를 상회하던 것과 비교하면 훨씬 덜 과열된 상태라는 분석이 많다. 대표 기술기업인 엔비디아, 알파벳, 마이크로소프트 등도 PER 30배 이하에 거래되고 있어, 높은 기대치를 반영한 수준이지만 과도하게 부풀려졌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평가도 존재한다.
이 같은 흐름은 AI 산업이 점차 현실성과 수익성이라는 기준의 시험대에 올랐음을 시사한다. 향후에도 투자는 지속되겠지만, 자금 시장에서는 눈에 보이는 실적과 수익 흐름을 중요시하는 균형 있는 접근이 더욱 요구될 것으로 보인다. 투자자들 역시 낙관 일변도가 아닌 위험 관리 관점에서 기술주를 살피는 태도가 필요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