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초 이후, 특히 미국을 중심으로 비트코인 현물 ETF의 급속한 성장은 단순히 가격 상승의 요인에 그치지 않고, 암호화폐 시장 전반에 걸친 깊은 구조적 변화를 촉진하는 촉매제로 작용하고 있다. 2025년 1분기 기준, 미국 내에서만 500억 달러 이상의 자금이 비트코인 현물 ETF에 유입되었으며, 이는 전통적인 금융 인프라를 통해 디지털 자산으로 유입되는 기관 자본의 규모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지표다. 이더리움 ETF 또한 승인 이후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였는데, 8월 한 달 동안에만 28억 달러 이상의 자금이 유입되었다. 이는 이더리움이 단순한 알트코인을 넘어, 기관 포트폴리오 다각화 전략 내에서 핵심 자산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거래소 유동성의 구조적 감소
그러나 이러한 긍정적인 흐름과는 별개로, 시장 내 유동성 분포가 점점 왜곡되고 있다는 우려도 함께 커지고 있다. ETF로 유입되는 자산은 일반적으로 장기 보유 성향의 기관 투자자들에 의해 보관되며, 이는 해당 자산이 기존의 전통적 거래소에서는 유통되지 않게 된다는 뜻이다. 2025년 8월 기준, Glassnode의 데이터에 따르면 거래소에 보관된 비트코인의 비율은 전체 공급량의 약 14.5% 수준까지 하락했으며, 이는 2022년에 기록된 17~18%에서 뚜렷하게 감소한 수치다. 이와 같은 현상은 실제 시장에서 거래 가능한 BTC의 양이 줄어들고 있음을 보여준다.

유동성 풀의 축소는 단기적으로는 공급 쇼크를, 장기적으로는 가격 탄력성의 왜곡을 초래할 수 있다. 이는 수요가 조금만 증가해도 가격이 과도하게 상승하거나, 반대로 급작스러운 매도가 발생할 경우 가격이 급락하는 등의 더 변동성 높고 취약한 거래 환경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앙 집중식 유통의 위험
ETF는 투자 편의성과 신뢰성을 제공하지만, 동시에 소수의 대형 기관에 자산의 수탁 및 운용 권한을 집중시키게 된다. 이러한 집중화는 암호화폐의 핵심 철학인 탈중앙화와 상반되는 구조적 중앙화의 동학을 형성하며, ETF 발행사나 수탁 기관이 정책을 변경할 경우 그 영향은 시장 전반으로 확산될 수 있다. 또한 ETF를 통해 보유되는 자산의 비중이 점점 커질수록 온체인 유동성의 상대적 비율은 줄어들게 되고, 이는 탈중앙화 금융(DeFi) 및 P2P 암호화폐 생태계의 미래에 대한 우려로 이어질 수 있다. 이들 생태계는 자유롭게 유통되는 자산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미묘한 전략이 필요한 전환점
ETF의 부상은 암호화폐 산업이 제도권으로 진입하는 데 있어 역사적인 전환점을 의미하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유동성 구조 변화, 중앙 집중화로 인한 리스크, 그리고 전체 거래 생태계의 재편이라는 동시다발적인 변화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앞으로 암호화폐 시장은 단순한 가격 투기를 넘어서, 자산 분포의 질적 변화와 시스템 리스크에 대한 통찰력을 중심으로 보다 전략적이고 거시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이는 새로운 시장 환경 속에서 장기적인 건전성과 회복탄력성을 보장하기 위한 필수적인 조건이다.
제도화에 따른 회복탄력성 구축
가속화되는 기관 도입 흐름 속에서 지속 가능한 시장 구조를 확보하기 위해, 몇 가지 대응책을 고려할 수 있다. 거래소와 유동성 공급자들은 기존 금융 시장에서 기초 자산으로 활용되는 원자재나 주가지수 등을 도입하고, 더 낮은 진입 장벽과 더 종합적인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전통 시장보다 경쟁력 있는 구조를 만들어갈 수 있다. 동시에 탈중앙화 금융 플랫폼은 접근성과 상호운용성을 강화하여 새로운 온체인 유동성을 끌어들일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정책적 측면에서는 ETF 수탁 구조에 대한 보다 명확한 공개와 리밸런싱 방식의 표준화가 자산 집중에 따른 리스크를 줄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디지털 자산이 전통 금융과 점차 융합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 기관 자본의 규모와 탈중앙화의 회복력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것은 암호화폐 생태계 전체의 철학과 효율성을 지켜나가기 위한 핵심 과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