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의 암호화폐에 대한 규제 전환과 인공지능(AI)의 기술 혁신이 맞물리면서 스테이블코인 시장이 빠르게 부상하고 있다. 이른바 "암호화폐의 챗GPT 모멘트"라는 표현까지 나올 만큼, 스테이블코인을 중심으로 대기업의 디지털 자산 채택이 확산되는 분위기다.
애플(AAPL), 아마존(AMZN), 엑스(X), 에어비앤비(ABNB), 메타(META), 구글(GOOGL), 우버(UBER)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자사 플랫폼에 스테이블코인 결제를 도입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 도이치은행 등 10개 주요 글로벌 은행들도 이를 도입하거나 직접 발행을 검토 중이다. 스테이블코인은 미 달러와 같은 법정화폐에 고정된 가치를 갖는 디지털 자산으로, 최근 1년간 전세계에서 약 27조 달러(약 3경 8,880조 원)에 달하는 거래 규모를 보였다.
디지털 자산 플랫폼 비트웨이브의 공동창업자 에이미 칼노키는 "지금은 기업들이 디지털 자산을 채택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언제 본격적으로 도입하느냐가 핵심"이라며 기업 투자의 대세 전환을 강조했다.
이 같은 배경에는 지난 7월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한 ‘미국 스테이블코인 국가 혁신법(GENIUS Act)’이 있다. 이 법은 스테이블코인 발행 및 사용에 대한 포괄적인 규제 프레임워크를 제공하며, 금융 회사와 투자자에게 명확한 기준을 제시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도 ‘프로젝트 크립토’라는 과제를 출범시켜 블록체인 기반 자산의 거래를 제도화하는 작업에 본격 착수했다.
크립토 전문 투자사 유레카 파이낸스의 창립자 게리 양은 "이제는 돈을 찍어내는 자의 힘이 아니라, 통화의 구매력을 구축하는 법적 인프라가 중요해졌다"며 GENIUS 법안과 SEC의 움직임이 금융 질서 자체를 재편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스테이블코인의 주류 확산에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있다. 각 기업이 발행한 스테이블코인이 현재는 폐쇄된 플랫폼 내에서만 통용되기 때문에, 상호 호환성 즉, 인터페러빌리티 문제가 주요하게 부각되고 있다.
이에 대한 해법으로 AI의 개입과 오픈 프로토콜 기반 결제 체계가 조명받는다. 특히, 클라우드플레어와 코인베이스는 `HTTP` 기반의 결제 신호 x402 표준을 활용해 개방형 결제 표준을 개발 중이며, 구글은 AI 에이전트를 통한 소비자 결제를 자동화하는 ‘AP2 결제 프로토콜’을 병행 개발 중이다. 이 기술이 성숙되면, AI가 사용자를 대신해 쇼핑과 결제를 실시간으로 처리할 미래가 가시화될 수 있다.
다만, 급성장하는 스테이블코인 산업에도 보안과 사생활 문제는 여전히 단점으로 지목된다. 특히 블록체인의 트랜잭션 대기열인 멤풀(Mempool)을 공략하는 ‘MEV(최대 추출 가능 가치) 공격’이 늘고 있으며, 최근 코인베이스가 30만 달러(약 4억 3,000만 원) 규모의 피해를 입은 사건도 있었다. 더 큰 사건으로는 올해 2월 북한 해커 조직이 이더리움 지갑을 해킹해 약 15억 달러(약 2조 1,600억 원)를 탈취한 사례도 보고됐다.
보안 스타트업 스케일랩스는 'BITE 프로토콜'이라는 신기술로 트랜잭션 내용을 암호화해 이러한 보안 취약점을 완화하려 한다. 해커들의 사회공학 기법과 개인키 유출 위협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보다 강력한 프라이버시 보호 장치가 요구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과 시장은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기대감을 거두지 않고 있다. 글로벌 외환 거래량이 하루 9조 6,000억 달러(약 1경 3,800조 원)에 달하는 현실에서, 스테이블코인이 이 거대한 시장의 일부를 차지할 수 있다는 전망이다. 블록체인 플랫폼 제타체인의 생태계 리더 매튜 크루시에스키는 “결국 스테이블코인의 궁극적인 목표는 외환 시장 진입이며, 수천 조 달러 규모의 이 시장은 누구나 탐낼 만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