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자산이 명확한 규제 체계 아래 ‘단기 거래’ 대상에서 장기적 관점의 ‘자산 운용’ 시대로 돌입하고 있다. 규제, 보안, 시장 구조 전반에서 안정성과 신뢰가 강화되며 산업이 지속가능한 성장 단계에 진입했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가상자산 산업에서 가장 주목된 변화 중 하나는 각국의 규제 정비다. 미국은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의 발행과 유통 기준을 명시한 ‘지니어스(GENIUS)’법을 통과시킨 데 이어, 최근에는 ‘증권’과 ‘상품’ 구분을 명확히 하는 ‘클래리티(Clarity) 법’의 상원 심의를 앞두고 있다. 유럽연합(EU)도 2024년 12월부터 가상자산시장규제법(MiCA)을 시행하며 발행, 유통, 서비스 제공 전반을 아우르는 포괄적 규제 프레임워크를 확립했다.
이와 더불어, 시장 신뢰도 확보의 필수 조건인 보안 컴플라이언스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거래소들은 보안 시스템 고도화는 물론, 이상 거래 탐지, 범죄 대응 역량 강화 등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세계 최대 가상자산 거래소인 바이낸스는 가상자산 범죄 수사 협력을 위해 법 집행 기관 전용 채널을 운영하면서, 온체인 데이터 분석을 기반으로 범죄 자금 흐름 추적과 용의자 특정, 자금 동결 및 회수 과정 등을 지원하고 있다. 이외에도 ‘2단계 인증(2FA’), ‘안티 피싱 코드’, ‘바이낸스 Verify’ 등 사용자 보호를 위한 기능과 도구도 지속 강화하며 안전한 사용자 거래 환경 구축에 집중하고 있다.
투자 환경을 뒷받침하는 인프라도 빠르게 성장 중이다. 일부 거래소들의 경우 은행, 증권사 등의 전통 금융 기관들이 규제 준수 및 보안 요건을 충족하면서 디지털 자산 시장에 손쉽게 진입할 수 있도록 CaaS(Crypto as a Service)를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글로벌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의 USD 기관 디지털 유동성 펀드 ‘비들(BUIDL)’이 바이낸스의 기관용 거래 담보로 채택되기도 했다.
가상자산 산업의 불확실성 해소는 기관 투자자와 전통 금융(TradFi) 자본의 직접 유입이라는 구조적 개편으로 이어졌다. 스테이트 스트리트 글로벌 어드바이저(SSGA)에 따르면 글로벌 가상자산 ETF의 운용 자산(AUM)은 1,910억 달러(약 280조 원)에 달했고, 미국 비트코인 ETF 시장의 기관 투자자 비중은 약 24.5%까지 상승했다.
국내에서도 다양한 변화가 시도되고 있다. 금융당국은 2025년 비영리법인에 대한 계좌 개설을 허용한 데 이어, 2026년 1분기 내 ‘영리법인 가상자산 가이드라인’ 공개를 추진 중이다. 이에 제도적 장벽에 막혀 있던 국내 기업들의 가상자산 재무 투자가 본격화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가상자산 커스터디(수탁) 시장 선점을 위한 금융권 투자 확대도 눈에 띈다. 지난해 11월 한국디지털자산수탁(KDAC)은 제3자 배정 방식의 유상증자를 통해 상환전환우선주 104만주를 발행했다. 주요 투자자는 NH디지털얼라이언스 펀드와 티시스다. KDAC에는 신한은행, NH농협은행 등이 주주로 참여하고 있다. KB국민은행의 경우 해시드, 해치랩스와 한국디지털에셋(KODA)를, 하나은행은 미국 커스터디 전문기업 비트고(BitGo)와 합작해 비트고코리아를 설립한 바 있다. 최근에는 미래에셋그룹 계열사인 미래에셋컨설팅이 코빗의 주요 주주들과 지분 인수를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는 등 전통금융과 디지털자산 업계간의 합종 연횡 흐름이 가속화되고 있다.
블록체인 전문 VC 해시드는 얼마 전 공개한 연례보고서에서 2026년을 전후로 디지털자산이 더 이상 ‘투자의 대상’에 머무르지 않고 결제·정산·신용·운영 등 경제의 핵심 기능을 수행하는 인프라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보고서는 ‘블록체인은 단순한 기술 플랫폼을 넘어 기업과 기관의 실제 업무 흐름을 처리하는 운영 레이어로 진화하고 있고, 이러한 변화는 이미 일부 영역에서 현실화되었다’고 분석했다. 특히 보고서는 디지털 자산 산업이 과도한 실험 단계를 지나, 실제 사용성과 반복 가능한 구조를 갖춘 서비스들이 본격적으로 선별되기 시작했다고 짚었다. 단순한 가격 상승이나 단기 유동성보다 실질적인 수요와 운영 안정성, 그리고 장기적인 지속 가능성이 산업의 핵심 경쟁 기준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설명이다.
바이낸스 관계자는 “글로벌 가상자산 산업은 명확한 규제와 보안·컴플라이언스 강화, 기관 참여 확대라는 세 가지 축이 동시에 맞물리며 구조적 전환 국면에 들어섰다”며, "앞으로는 스테이킹이나 담보 기반 운용 등 다양한 수익형 서비스가 제도권 금융 환경과 조화를 이루며, 디지털 자산의 안정화 흐름이 더욱 뚜렷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