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중앙은행 디지털화폐 기반 실증사업인 ‘프로젝트 한강’ 2단계를 조만간 시작하면서, 예금토큰을 실제 금융 인프라로 연결하는 작업이 본격화하고 있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을 위한 국회 입법 논의가 속도를 내지 못하는 사이, 한국은행은 먼저 은행권 예금을 디지털 형태로 옮겨 결제에 쓰는 구조를 시험하며 상용화 가능성을 넓히는 모습이다.
20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한은과 시중은행들은 2단계 예금토큰 실거래 테스트를 위한 시스템 개발과 참가자 모집 준비를 마무리하고 있다. 일정이 계획대로 진행되면 이르면 9월부터 실거래가 시작될 전망이다. 프로젝트 한강은 한국은행이 블록체인 기반 기관용 중앙은행 디지털화폐를 발행하고, 이를 바탕으로 시중은행이 예금토큰을 발행해 일반 이용자가 실제 지급결제에 사용하는 과정을 검증하는 사업이다. 쉽게 말해 중앙은행이 디지털 결제의 뼈대를 만들고, 은행이 그 위에서 소비자용 디지털 예금을 운영하는 방식이다.
이번 2단계는 단순한 기술 점검을 넘어 실제 서비스 가능성을 확인하는 데 무게가 실린다. 지난해 4월부터 6월까지 진행된 1단계 실거래 테스트에서는 전자지갑 기준 8만1천명이 참여해 예금토큰으로 11만4천880건을 거래했다. 당시에는 결제 시스템이 작동하는지 확인하는 성격이 강했다면, 이번에는 이용 편의성과 시장 확장성이 핵심이다. 참여 은행도 기존 7개 은행에서 경남은행과 iM뱅크가 추가돼 9개로 늘어난다. 가입 절차를 더 간단하게 하고, 개인 간 송금과 생체인증, 예금토큰 자동 입출금 같은 기능도 새로 도입된다. 사용처 역시 한국은행이 정한 제한된 가맹점에서 벗어나 각 은행이 별도로 협약한 가맹점까지 확대될 예정이다. 특히 2단계는 별도 종료 시한 없이 계속 운영된다는 점에서 시험사업과 상용 서비스의 경계가 한층 옅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예금토큰은 민간 결제에만 쓰이는 것이 아니라 정부 재정 집행 방식에도 적용 범위를 넓히고 있다. 가장 먼저 추진되는 사례는 기후에너지환경부의 전기차 충전시설 보조금 지급 사업이다. 정부는 그동안 사업자에게 일반 계좌로 보조금을 지급했지만, 앞으로는 일부를 예금토큰 방식으로 바꾸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6월 말 응모 사업자 서류 검증을 마쳤고, 평가위원회 심사를 거쳐 조만간 사업자가 선정될 예정이다. 이후 선정된 사업자는 예금토큰 지갑을 개설해 보조금을 받게 된다. 블록체인 기반 자산은 자금의 사용처나 사용 기한을 사전에 설계할 수 있어, 보조금이 목적 외로 쓰이거나 부정 수급되는 문제를 줄이는 데 유리하다는 것이 한국은행과 정부의 판단이다. 공공부문 업무추진비를 예금토큰으로 지급하는 실증사업도 함께 검토되고 있으며, 재정경제부 협의를 거쳐 연내 시범 부처가 정해질 가능성이 크다.
이와 함께 디지털 국채 시장과의 연결도 준비되고 있다. 재정경제부는 지난 15일 하반기 경제성장전략에서 내년 한국은행의 기관용 중앙은행 디지털화폐와 연계한 국채 토큰화 실증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국채 토큰화는 국채를 종이나 전통적 전산 기록이 아니라 블록체인 위의 디지털 자산 형태로 발행·유통하는 개념이다. 국채 거래와 결제가 같은 디지털 시스템 안에서 동시에 이뤄지면 거래 효율성과 안정성을 높일 수 있다는 기대가 있다. 결국 프로젝트 한강은 단순한 결제 실험을 넘어, 보조금 지급과 공공 자금 집행, 나아가 국채 유통까지 포괄하는 디지털 금융 생태계의 기반을 닦는 작업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은 향후 원화 기반 디지털 자산 제도화 논의와 맞물리면서, 한국의 지급결제 체계와 공공 재정 운영 방식 전반에 적지 않은 변화를 가져올 가능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