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플(Ripple)이 리플(XRP) 기반 XRP 레저(XRP Ledger·XRPL)의 양자컴퓨팅 위험 대응을 2028년 목표로 추진한다. 현재 네트워크가 침해됐다는 경고가 아니라, 공개키 암호를 쓰는 블록체인이 ‘Q-Day’ 전에 어떤 절차로 양자내성 체계로 옮겨갈지를 정하는 보안 전환 작업이다.
리플은 4월 20일 공식 블로그에서 XRP 레저의 포스트퀀텀 준비 로드맵을 공개했다. 로드맵은 △Q-Day 비상 이행 계획 △2026년 상반기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NIST) 권고 알고리즘 시험 △2026년 하반기 개발자 네트워크 통합 시험 △2028년까지 본격 전환 등 4단계로 구성됐다.
Q-Day는 현재 쓰이는 공개키 암호가 충분히 강한 양자컴퓨터에 의해 깨질 수 있는 시점을 뜻한다. 블록체인에서는 거래 과정에서 공개키가 온체인에 드러나는 구조가 위험 요인으로 꼽힌다. 지금 당장 공격이 어렵더라도 공개된 데이터를 모아뒀다가 나중에 해독하는 ‘수집 후 해독’ 시나리오가 가능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구글 퀀텀 AI(Google Quantum AI)는 3월 31일 공개한 연구에서 256비트 타원곡선 이산로그 문제를 푸는 데 필요한 자원이 기존 추정보다 줄었다고 밝혔다. 구글 연구진은 특정 조건에서 50만 개 미만의 물리 큐비트로 수분 안에 실행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리플은 이 연구를 근거로 양자 위험이 순수한 이론 논의에서 실제 준비가 필요한 영역으로 옮겨왔다고 봤다.
XRP 레저는 현재 메인넷에서 ECDSA와 Ed25519 서명 알고리즘을 쓴다. XRP 레저 공식 문서는 계정에 정규 키 쌍을 둘 수 있고 이를 언제든 교체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 구조는 사용자가 계정 자체를 바꾸지 않고도 키를 회전할 수 있게 하지만, 공식 문서 기준 양자내성 서명이 메인넷에 적용된 상태는 아니다.
리플은 이런 계정 구조를 전환의 출발점으로 보고 있다. 회사는 기존 계정 체계와 시드 기반 키 생성, 검증인 네트워크를 활용해 양자내성 서명을 단계적으로 시험하겠다는 입장이다. 같은 글에서 프로젝트 일레븐(Project Eleven)과 협력해 검증인 테스트, 개발자 네트워크 벤치마크, 양자내성 커스터디 지갑 시제품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프로젝트 일레븐은 5월 19일 발표에서 리플과의 협업이 XRP 레저의 검증인, 커스터디, 네트워킹, 지갑 계층을 점검하는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알렉스 프루든(Alex Pruden) 프로젝트 일레븐 최고경영자 겸 공동창업자는 “모든 주요 블록체인이 같은 암호학적 취약점에 노출돼 있지만, 대응은 대부분 연구 단계에 머물러 있었다”고 말했다. 리플의 접근을 실제 구현 문제로 다루는 방식으로 평가한 발언이다.
아요 아킨옐레(J. Ayo Akinyele) 리플X 엔지니어링 책임자는 프로젝트 일레븐 발표에서 “양자 위협은 가설이 아니라 명확한 시간표가 있는 엔지니어링 과제”라고 말했다. 그는 XRP 레저가 키 회전과 검증인 네트워크를 갖추고 있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상황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양자내성 전환은 단순히 새 암호 알고리즘을 고르는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서명 크기가 커지면 저장 공간과 대역폭, 검증 비용이 함께 늘어날 수 있다. 검증인과 지갑, 커스터디 사업자가 같은 전환 절차를 따라야 하기 때문에 메인넷 반영까지는 기술 검증과 생태계 조율이 필요하다.
업계 평가는 엇갈린다. 코인데스크(CoinDesk)는 번스타인(Bernstein) 보고서를 인용해 양자 위험을 비트코인(BTC)과 암호화폐 생태계의 중장기 업그레이드 사이클로 볼 수 있다고 전했다. 반면 로이터(Reuters)는 암호화폐 기업들이 양자 위협에 대비한 방어책을 준비하고 있으며, 포스트퀀텀 전환은 수년이 걸릴 수 있는 작업이라고 보도했다.
주의할 대목도 있다. XRP와 관련해 확산된 ‘0.03% 위험’ 수치는 리플 공식 수치가 아니다. 후속 팩트체크는 이 수치가 ‘휴면 상태의 공개키 노출 지갑’이라는 좁은 범위에 한정된 값이라고 지적했다. 전체 XRP가 양자 위험에서 벗어났다는 뜻으로 쓰기는 어렵다.
국내 투자자에게도 이 사안은 단기 가격 재료보다 네트워크 인프라의 장기 보안 전환 문제에 가깝다. 본지는 앞서 XRP 레저 활성 이용자 지표가 약 50만명으로 늘었다고 보도했다. 이용 지표가 커질수록 지갑과 검증인, 커스터디 계층의 전환 절차는 더 복잡해질 수 있다.
로이터는 업계 관계자들이 너무 이른 전환이 새 취약점을 만들 수 있다고 우려한다고 전했다. 양자내성 서명은 기존 서명보다 무겁고, 검증 환경에 따라 성능 부담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리플의 2028년 목표도 완료된 전환이 아니라 시험과 제안, 검증인 조율을 거치는 로드맵 성격이다.
이번 사안은 리플 가격이나 단기 시장 흐름보다 블록체인 보안 표준 전환에 가깝다. XRP 레저가 양자내성 체계를 실제 메인넷에 반영하려면 알고리즘 선택, 검증인 승인, 지갑 전환 절차가 남아 있다. 현재 확인된 일정은 2026년 알고리즘 시험과 개발자 네트워크 통합 시험, 2028년 목표 전환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