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F가 시장 구조를 바꿨듯, ‘토큰화’ 역시 금융의 작동 방식을 근본적으로 재편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단순한 자산 포장이 아니라, 유동성과 가격 형성 메커니즘 자체를 바꾸는 구조적 변화라는 점에서다.
1990년대 등장한 ETF(상장지수펀드)는 처음엔 기존 펀드를 거래소에 옮겨 담은 ‘포장지’ 정도로 여겨졌다. 하지만 창출·상환 구조와 차익거래 기반 유동성을 도입하면서 시장의 가격 결정 방식 자체를 바꿨다. ETF는 1차 시장과 2차 시장의 경계를 흐리며, 차익거래를 시장 안정의 핵심 장치로 만들었다.
토큰화, ETF와 닮은 ‘시장 구조 혁신’
토큰화된 자산 역시 단순 발행으로 끝나지 않는다. 기초 자산을 예치하면 토큰을 새로 발행하고, 반대로 토큰을 소각하면 기초 자산을 돌려받는 구조를 가진다. 이는 ETF의 생성·상환 메커니즘과 동일한 원리다.
토큰 가격이 기초 자산보다 높아지면 차익거래자는 새 토큰을 발행해 공급을 늘리고, 반대로 저평가되면 토큰을 상환해 공급을 줄인다. 이 과정에서 가격은 자연스럽게 본래 가치에 수렴한다. 결국 토큰은 자산을 담는 ‘유동적 래퍼’이며, 가격 정합성은 차익거래가 유지한다.
가격은 ‘형태’가 아니라 연결 구조가 결정
ETF와 토큰화의 핵심은 동일하다. 둘 다 자산 묶음을 대표하는 거래 가능한 단위일 뿐이며, 중요한 것은 그 ‘형태’가 아니라 기초 자산과 가격을 연결하는 구조다.
ETF가 실시간 거래와 투명한 가격 형성을 가능하게 했다면, 블록체인 기반 토큰화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발행량, 이동, 유통 상황을 거의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어 시장 투명성이 더욱 강화될 수 있다.
24시간 거래, 토큰화의 핵심 가치
토큰화 시장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24시간 거래’다. 기초 자산 시장이 닫혀 있어도 거래는 계속된다. 이는 글로벌 ETF 시장에서 이미 검증된 구조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미국에 상장된 ETF는 유럽 또는 아시아 시장이 마감된 이후에도 계속 거래된다. 이때 가격은 과거 종가가 아니라 선물, 환율, 거시경제 뉴스 등을 반영해 형성된다. 시장참여자들은 ‘내재 공정가치’를 추정하며 가격을 맞춘다.
같은 논리는 토큰화된 주식에도 적용된다. 예컨대 애플 주식을 토큰화한 자산은 주말에도 거래될 수 있으며, 새로운 뉴스가 나오면 즉시 가격에 반영된다. 이 경우 토큰 가격은 오히려 월요일 개장가의 ‘선행 지표’ 역할을 할 수 있다.
시간대 넘는 거래 수요…비용은 점진적 감소
토큰화는 시간대가 다른 투자자들에게 특히 유용하다. 유럽 투자자가 금요일 밤에도 미국 자산 포지션을 조정할 수 있다는 점은 기존 시장에서는 불가능했던 기능이다.
물론 기초 시장이 닫힌 상태에서 유동성을 제공하는 것은 추가 비용과 위험을 수반한다. 이 때문에 거래 스프레드가 일시적으로 확대될 수 있다. 하지만 참여자가 늘고 리스크 관리 기술이 발전할수록 이러한 비용은 점차 줄어드는 구조다.
결국 24시간 시장은 외환시장처럼 자연스러운 표준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
ETF의 길 걷는 토큰화…다음 ‘10조 달러 시장’ 될까
현재 토큰화를 둘러싼 흐름은 초기 ETF 시장과 유사하다. 회의적인 시선 속에서도 점진적으로 제도권 참여가 확대되고, 특정 영역에서 먼저 확산되는 패턴이다. ETF 역시 같은 과정을 거쳐 현재 10조 달러(약 1경 5317조 원) 규모 시장으로 성장했다.
핵심은 기술의 참신함이 아니다. 효율성, 접근성, 시장 안정성을 얼마나 개선하느냐다. 이러한 조건을 충족하는 한, 토큰화는 ETF의 단순한 확장이 아니라 그 ‘논리적 진화’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높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