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중국산 해저케이블에 대해 자국 내 사용을 제한하는 새 규제를 발표하면서, 국내 전선업체들이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국가 안보를 명분으로 한 이번 조치는 향후 전력 인프라 분야까지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는 8월 7일(현지시간) 중국을 포함한 전략적 경쟁국의 해저 통신케이블 기술이나 장비가 미국 내 사업에 참여하는 것을 사실상 금지하는 규제를 채택했다. FCC는 이러한 조치를 사이버 및 물리 보안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하며, 통신 케이블의 유지·보수를 미국산 선박이나 신뢰받는 외국 기술을 통해 진행하도록 유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번 규제는 현재 통신용 케이블에 국한되지만, 전력망의 핵심인 HVDC(초고압 직류송전) 해저케이블로까지 그 영향이 확산될 수 있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HVDC 해저케이블은 주로 해상풍력발전소에서 생산된 전력을 본토로 이송하는 데 쓰이며, 고도의 기술력과 대형 투자, 긴 공사기간이 필요한 만큼 국가 에너지 안보와 직결된다. 통신용 케이블과 마찬가지로 전략적 인프라로 분류되는 만큼 똑같은 보안 논리가 적용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세계 HVDC 해저·지중 케이블 시장은 이탈리아의 프리스미안, 프랑스 넥상스, 덴마크 NKT, 그리고 한국의 LS전선 등 이른바 ‘빅4’ 기업이 85%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일본과 중국업체들도 일정 수준의 생산 능력을 갖추고 있으나, 대부분 자국 내수 중심으로 활동해 왔다. 특히 중국의 경우, 정부 주도 해상풍력 투자로 성장했지만 미국 시장에는 진출하지 못한 상태다. 미국 당국은 중국산 케이블이 해저 지형이나 군사 관련 정보를 수집할 수 있다는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자국 사용을 제한하고 있다.
이 같은 흐름 속에서 국내 업체들은 미국 시장에서의 기회를 확대하고 있다. LS전선은 실제로 미국 현지 생산거점 확보에 나섰다. 자회사인 LS그린링크는 올해 4월 버지니아주 체서피크시에 6억8천100만 달러(약 1조 원)를 투자해 해저케이블 생산공장 건립을 시작했으며, 오는 2027년 말 완공해 2028년 본격 생산에 돌입할 예정이다. 미국 생산기지 구축은 정책 리스크 회피뿐만 아니라 유럽시장까지 공급망을 확장하는 전략적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대한전선도 아직 현지 생산법인은 없지만, 미국 내 공장 설립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미국은 유럽에 이어 차세대 HVDC 해상풍력 시장으로 주목받는 지역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2030년까지 해상풍력 설비 30기가와트(GW) 설치를 목표로 정책적 지원을 이어왔으며, 현재까지 약 15GW 규모 프로젝트가 승인된 상태다. 비록 트럼프 행정부에서는 정책 추진 속도가 늦춰질 가능성은 있지만, 이미 착수된 다수의 사업은 인허가와 민간투자가 완료돼 큰 변동 없이 추진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흐름은 장기적으로 국내 업체들이 미국 현지화 전략을 통해 글로벌 입지를 강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특히 LS전선의 미국 생산거점은 향후 유럽 수출의 물류 교두보로도 활용 가능해, 글로벌 공급망 다변화에 따른 효과도 기대된다. 경제적, 정치적 불확실성이 커지는 가운데, 이런 전략적 대응은 한국 전선업계에 새로운 성장 동력을 제공할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