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이 원화 강세를 유도하기 위해 이르면 이번 주부터 대규모 환 헤지(환율 변동 위험을 줄이기 위한 거래 방식)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이는 정부와 한국은행이 최근 내놓은 다양한 외환시장 안정책과 맞물려 연말까지 급등한 원/달러 환율을 진정시키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최근 환율은 글로벌 달러 약세 흐름에도 불구하고 이례적으로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12월 20일 기준 원/달러 환율은 1,478.0원을 기록했고, 이는 올해 4월 이후 약 8개월 만에 최고치다. 지난달 말 기준으로 원화의 실질실효환율은 2009년 금융위기 당시 수준으로 떨어졌을 만큼, 원화 가치는 저조한 상태다. 당국은 해외 증권 투자가 지나치게 증가한 점이 수급 불균형을 초래해 환율을 끌어올렸다고 판단하고 있다.
특히 연말 종가 환율은 기업과 금융기관의 연간 재무제표 작성 기준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환율이 과도하게 오를 경우 외화부채의 원화 환산 금액이 증가해 재무 건전성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이는 신용등급 하락, 주가 약세, 대출 축소 등 연쇄 반응을 일으킬 수 있어 정부와 한국은행이 선제적 대응에 나선 배경이기도 하다.
국민연금이 구사할 수 있는 주요 수단은 한국은행과의 외환스와프를 활용한 구조적 환 헤지 거래다. 외환스와프란 국민연금이 원화를 맡기는 대신 한국은행에서 달러를 조달하는 방식으로, 현물환 시장에서 직접 달러를 매수하지 않아 환율 상승 압력을 줄일 수 있다. 확보한 달러를 해외 투자에 쓰거나 기존 자산에 대한 헤지 수단으로 활용하면 자연스럽게 시장에 달러가 공급돼 환율 하락을 유도할 수 있다.
다만, 이러한 외환스와프 거래는 한은 보유 달러를 줄이게 되므로 외환보유액 감소 우려가 뒤따른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한은은 내년 1월부터 금융기관의 외화예금 초과 지급준비금에 대해 이자를 지급하겠다고 밝혔는데, 이는 스와프 확대에 따른 유동성 조절 장치로 해석된다. 실제로 지난 4월 국민연금 관련 외환스와프 확대 이후 외환보유액이 한 달 만에 50억 달러 가까이 줄어든 전례도 있다.
시장에서는 이러한 조치들이 단기적으로 환율을 안정시킬 수 있을지에 대해 입장이 엇갈린다. 일부 전문가들은 계절적 요인과 수출업체의 달러 매도, 국민연금의 환 헤지 효과로 연말 환율이 1,450원까지 내려갈 수 있다고 본다. 반면 대외 불확실성과 미국 경제 변수 등이 환율을 다시 끌어올릴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이런 흐름은 내년에도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전문가들은 상반기 중 환율이 한때 1,350원까지 낮아질 수 있으나, 하반기 이후 금리 인하 종료나 외국인 자금 이탈 등으로 다시 상승세로 돌아설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구조적으로 해외에 자산을 이전하는 경향이 계속될 경우, 환율은 장기적으로 높은 수준에서 움직일 가능성이 높다는 게 시장의 공통된 평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