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블코인은 디지털 자산 산업의 기초 인프라이자, 규제와 기술, 신뢰가 교차하는 복합 설계의 결과물입니다. 이흥노 리버밴스 대표 칼럼을 통해 국내 기업을 위한 실질적 스테이블코인 설계 기준을 3부에 걸쳐 짚어봅니다. 📝 편집자주
이블코인 규제를 둘러싼 논의에서 가장 흥미로운 사례는 USDT다. 디지털 달러의 대명사로 자리잡은 테더(Tether)의 USDT는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스테이블코인이다. 그런데 이처럼 민감한 통화 인프라를 전 세계적으로 유통시키면서도 어떻게 법적 리스크를 피해갈 수 있었을까?
답은 간단하다. 법을 피한 것이 아니라, 법을 '설계에 녹여낸 것'이다.
USDT의 유통 구조는 철저히 하이브리드 설계를 따른다. 예를 들어, Metamask나 Phantom 같은 지갑에서 개인 간 USDT 거래는 누구나 자유롭게 할 수 있으며, 그 과정에서 KYC(고객신원확인)를 요구받지 않는다.
하지만 법정화폐로의 입출금, 즉 실질적인 달러와의 연결 구간에서는 Tether 플랫폼이나 제휴 거래소를 통해 여권, 거주지 증명, 법인 등록증 등 철저한 KYC 절차를 거쳐야 한다. 뿐만 아니라 AML(자금세탁방지) 측면에서도 Chainalysis, Elliptic 등과 협력하여 의심 지갑 주소를 실시간으로 감시하고, 필요한 경우 해당 주소의 토큰을 동결할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외환관리법에 대한 대응 역시 주목할 만하다. Tether는 발행 법인을 미국도 한국도 아닌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두었다. 규제 당국의 직접 관할을 벗어난 구조다. 하지만 동시에 미국 정부의 거부감을 줄이기 위해 준비금은 미국 국채, MMF, 현금성 자산 등으로 구성했고, 실제로 대규모 미국 국채 보유를 통해 전략적 수용을 끌어냈다.
이 모든 구조를 종합하면 USDT는 '유통은 탈중앙, 책임은 중앙'이라는 논리를 기반으로 한다. 규제 회피가 아닌, 규제 수용을 설계에 흡수한 것이다.
이 사례는 국내 기업에도 중요한 교훈을 준다. 아무리 탈중앙화를 표방하더라도, 실제 법적 책임이 작동하는 환매와 준비금, 발행 구간에서는 '책임지는 주체'를 명확히 설계해야 한다는 점이다. 특히 KYC, AML, 외환법, 회계 기준 등 복합적인 리스크는 기술적 해결이 아닌 구조적 설계로 다뤄야 한다.
스테이블코인은 결국 신뢰를 전제로 한 기술이다. 그리고 그 신뢰는 결국 구조로 증명되어야 한다. 법은 이제 장애물이 아니라, 설계의 일부다. 글로벌 유통을 목표로 하는 스테이블코인이라면, 그 출발점은 '법을 어떻게 흡수할 것인가'에 대한 정교한 설계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