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오전, 국내 최대 디지털 자산 거래소인 업비트가 미국 암호화폐 프로젝트 ‘에테나(Ethena)’의 네이티브 토큰인 ENA를 원화 마켓에 전격 상장했다. 앞서 빗썸(2월)과 코인원(4월)이 먼저 ENA를 상장한 가운데, 업비트 편입 소식은 단기적으로 20% 이상 가격 상승을 이끌며 시장의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겉으로는 혁신처럼 보이는 이 프로젝트에 대해, 업계 안팎에서는 “위험 구조를 내포한 수익형 착시 모델”이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특히 에테나가 발행하는 스테이블코인 USDe의 구조가 2022년 붕괴한 테라폼랩스의 LUNA-UST와 유사하다는 점에서, 또 다른 대규모 붕괴 사태로 번질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 델타 중립 기반 스테이블코인, USDe의 정체
에테나는 전통적인 법정화폐 기반 스테이블코인과 달리, ‘암호화폐 담보 + 파생상품 헤지’라는 독특한 구조를 지닌다. 사용자가 ETH 또는 stETH(스테이킹된 이더리움)를 담보로 예치하면, 이와 동시에 무기한 선물(Perpetual Futures) 시장에서 해당 자산에 대한 숏 포지션을 잡아 가격 변동성을 상쇄한다. 이른바 ‘델타 중립 전략’이다.

이렇게 발행된 USDe는 다시 sUSDe로 스테이킹되어, 연 10~18%에 달하는 수익을 제공하는 구조다. 초기에는 연 60% 이상의 수익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표면적으로는 정교한 금융공학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펀딩레이트 캐리 트레이드’에 기반한 구조다. 즉, 현물 자산을 보유하면서 선물을 숏해 생기는 금리 차익(펀딩레이트)을 수취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 전략은 ▲펀딩레이트가 양(+)을 유지할 것, ▲현물과 선물 간 가격 차이가 일정할 것, ▲담보 자산의 유동성과 시장 안정성이 유지될 것이라는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만 작동한다.
■ 미국 규제와의 정면 충돌…‘스테이블코인’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에테나의 구조는 지난 6월 미국 의회가 통과시킨 스테이블코인 규제 법안, 일명 ‘GENIUS Act’와 핵심 조항에서 충돌한다. 해당 법안은 스테이블코인으로 인정받기 위한 요건으로 ▲1:1 비율의 법정화폐 혹은 미국 국채 기반 담보 유지, ▲이자 및 유사 수익 지급 금지를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USDe는 ETH를 기반으로 담보를 구성하며, sUSDe를 통해 수익을 제공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현행 미국 법상 ‘합법적 스테이블코인’으로 인정받기 어렵다. 에테나는 최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와 비공개 회동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지만, 공식적인 법적 해석이나 규제 가이던스는 여전히 부재한 상황이다.
이에 따라 미국 시장에서의 서비스 확장 및 기관 투자 유치는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글로벌 디지털 자산 규제 기준이 사실상 미국 중심으로 형성된다는 점에서, 이 문제가 해소되지 않는다면 프로젝트의 생존 자체가 위협받을 수 있다.
■ 테라(LUNA)의 그림자…구조적 유사성에 주목
USDe는 그 구조상 LUNA-UST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설계되었지만, 투자자 유입 구조나 수익 제공 방식에서 유사한 위험 구조를 내포한다.

실제로 펀딩레이트는 이미 급감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60%에 달했던 연 수익률은 올해 들어 5% 이하로 떨어졌으며, 이는 sUSDe의 스테이킹 유인을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더 많은 사용자가 빠져나가면 시스템은 페그를 유지하기 어려워지고, 이는 바로 USDe의 신뢰도와 ENA 가격의 급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게다가 최근 프로젝트 공동 설계자로 알려진 아서 헤이즈 전 BitMEX CEO가 ENA 토큰 상당량을 매각했다는 보도까지 더해지며, 투자자들의 불안 심리는 커지고 있다.
■ 업비트 상장, 구조 불확실성 해소 없이 진행
이번 업비트 상장은 국내 거래소 가운데 가장 늦은 상장이었지만, 그만큼 가장 큰 반향을 일으켰다. 하지만 구조적 불안정성이나 규제 리스크는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채, 단기 유동성 확보 및 가격 부양 효과만을 노린 ‘투자자 설거지 상장’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익명을 요구한 블록체인 보안 전문가는 “에테나는 기존 스테이블코인 모델의 한계를 넘어선 시도이긴 하나, 구조적 위험이 크고 미국 규제의 벽도 높은 만큼,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시장 전문가는 “펀딩레이트가 음(-)으로 전환되는 시점부터 구조가 무너질 수 있다”며 “단기 유입 이후 수요가 꺾이면, 가격 하락은 물론 시스템 자체의 안정성에도 큰 타격이 갈 수 있다”고 덧붙였다.
■ 구조는 정교하나, 기반은 취약
에테나는 분명 기존 스테이블코인 모델과는 다른 새로운 실험이다. 금융 파생상품을 통한 델타 중립 전략을 통해 고수익을 추구하는 ‘암호화폐 네이티브 달러’를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기술적 참신함은 인정받을 만하다.
그러나 현재 시점에서 이 모델은 세 가지 중대한 리스크를 안고 있다. 첫째, 펀딩레이트가 하락할 경우 수익 구조가 무너질 수 있으며, 둘째, 미국 규제와의 충돌로 인해 법적 불확실성이 지속되고 있다. 셋째, 투자자 신뢰가 약화될 경우 구조 전체가 청산 압력에 직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시스템 안정성에도 심각한 위협이 존재한다.
이는 곧 투자자들에게 ‘수익’이 아닌 ‘위험’을 의미할 수 있다. 2022년의 루나 사태가 그랬듯, 스테이블코인의 신뢰는 구조보다 심리에 의해 붕괴할 수 있다. 그 구조가 아무리 정교해도, 외부 환경에 취약하다면 이는 결국 위험한 실험에 불과하다.
ENA는 과연 테라의 교훈을 넘을 수 있을까. 아니면, 또 다른 LUNA로 기록될 것인가. 판단은 결국 투자자들의 몫이다.